[금주의 영화] 베러 와치 아웃·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42면   |  수정 2018-02-09
하나 그리고 둘

베러 와치 아웃
로맨틱한 미소년이 미치광이로 돌변


20180209

현대 장르 영화가 추구하는 미덕 중 하나는 반전(反轉)이다. 극이 반전되면 쫓던 사람이 쫓기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프로타고니스트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안타고니스트로 돌변하기도 한다.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도 반전은 종종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움, 나아가 충격 등을 불러일으키지만 공포 영화는 여기에 ‘두려움’이라는 감정까지 수반한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예측을 벗어나는, 지금까지 극의 흐름을 뒤전는 일들을 갑자기 눈앞에 펼쳐 놓는 데서 공포 영화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현실에서 있어서는 안 될, 믿고 싶지 않은 사회적 금기와 연결된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원한다면, ‘베러 와치 아웃’(감독 크리스 펙커버)은 꽤 볼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기적 결핍 소년의 정신적 문제 극단적 표출
사이코패스 캐릭터·잔혹한 스릴러 버전 돋보여



성가와 캐럴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게 되는 ‘애슐리’(올리비아 데종)는 몇 년간 베이비시터를 해왔던 ‘루크’(리바이 밀러)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한다.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애슐리를 좋아하는 루크는 부모님이 저녁 모임에 간 틈을 타 그녀와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친구 ‘개럿’(에드 옥슨볼드)까지 동원해 남성성을 과시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애슐리는 아이들에게 크게 화를 낸다. 그러자 루크는 로맨틱한 미소년에서 미치광이 소년으로 돌변한다.

루크가 벌이는 광기 어린 폭력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끔찍해진다. 괴한이 아니라 열두 살 소년이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유혈이 낭자한 슬래셔 무비나 원한에 찬 영혼이 인간의 몸에 들어와 활개 치는 오컬트 무비 이상으로 공포스럽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루크를 돌봐줬던 애슐리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 심각한 범죄로 번지는 것을 목도하는 개럿, 루크에게 또래다움을 기대하는 관객들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영화는 ‘어쩌다 이런 괴물이 탄생했을까’라는 탄식 섞인 질문에 여러 힌트를 깔아놓는다. 그는 유아기로부터의 결핍 때문에 신체만큼 성장하지 못한 소년의 정신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캐릭터다. 루크는 밤마다 재워주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턴가 사라진 후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한편 베이비시터에게 사랑을 느낀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애슐리로 옮겨지자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또한 자연스럽게 애슐리의 현 남자친구와 전 남자친구에게 전이된다. 때문에 애슐리의 단호한 거절은 루크에게 억압되어 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분출시킨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즉흥적으로 보였던 루크의 범행이 허점을 드러내는 대신 착착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순간들은 또 다른 종류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완전범죄를 자신하는 루크의 계획대로 될 것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의심하는 사이, 영화는 영리한 결말을 보여주며 재빨리 끝난다. 새로운 사이코패스 캐릭터와 그가 선사하는 잔혹한 스릴에 환호할 것인지 돌을 던질 것인지는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후자 쪽이라 할지라도 크리스마스 시즌과 화사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저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광기 어린 범행이 상당히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출되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명백히 ‘나홀로 집에’(감독 크리스 콜롬버스)의 스릴러 버전을 표방한 대담함과 재치 또한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르: 공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89분)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흑인 민권운동에 오해하고 있는 것들


20180209

평등에 대해, 인권에 대해 얼마나 더 외칠 셈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성인권과 인종차별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왜 계속 화제가 되는지 불평한다. 때로 그들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으니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 액티비스트들을 타이르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성장은 기득권의 직간접적 폭력에 맞선 투쟁과 희생 속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겨우 이만큼) 이루어졌다.


흑인차별에 관한 수많은 영화·뉴스 수집한 다큐
백인의 조롱·멸시…피부색의 굴레 ‘현재 진행형’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감독 라울 펙)는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리멤버 디스 하우스’를 근간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로,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한 지난한 역사를 담고 있다. 30쪽의 미완성 에세이로 끝난 그의 글이 ‘사무엘 L. 잭슨’의 목소리를 입고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은 그것이 21세기에도 공명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작가의 연설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 및 당시의 뉴스 릴 자료들을 수집해 효과적으로 조합하는 데 성공한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내레이터의 톤처럼 신중하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진다. 볼드윈은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메드가 에버스’의 삶과 죽음을 중심으로 당대 사회가 흑인 민권운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꼬집는다. 흑인에게 ‘사람’ 대신 ‘니그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한, 그리고 백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당당히 학교에 발을 디뎠던 열다섯 살의 흑인 소녀 ‘도로시 카운츠’를 외롭게 두는 한 그가 원하는 사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행히도 그의 예측대로 변화는 매우 더디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문라이트’(감독 배리 젠킨스)는 흑인들이 여전히 피부색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미학적으로 증언해 찬사를 받았다. 이 다큐의 모든 내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이 흑인이기 이전에 미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볼드윈은 “흑인의 미래는 바로 이 나라의 미래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한국에는 어떤 슬로건으로 바꿔볼 수 있을까. 현재 어디서든 부당한 처우나 시선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요,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