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地選을 ‘지방의 무덤’으로 만들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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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2   |  발행일 2018-02-12 제29면   |  수정 2018-02-19
20180212
황종규 동양대 교수

최근까지 영국에서 지낸 탓에 영국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필자가 살던 셰필드(Sheffield)는 런던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의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산업혁명의 본고장으로 맨체스터, 리즈와 같이 역사에 이름을 드높였지만, 이 지역의 도시연구자들은 먼 한국의 포항제철이 자신들의 철강산업을 무너뜨리는 데 속수무책이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포항에서 군대생활을 한 탓에 남다른 느낌이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모두가 떠나는 황폐해진 역사적 산업도시를 문화예술과 다인종, 그리고 대학이 중심이 된 지역재생의 세계적 선진지로 만든 그들의 저력과 사회적 역량의 실체가 더 궁금했던 것이 셰필드로 향하게 만든 동인이었다.

막상 짐을 풀고 대학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니 ‘잉글랜드 북부(Northern England)’가 그들의 정책 화두였다. 런던 집중현상에 대한 지역의 좌절과 지역 격차에 대한 정치적 분노가 유럽연합(EU)이 런던 금융가의 배만 불린다는 정치적 선전과 결합해 브렉시트(BREXIT) 지지로 연결됐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이 주를 이뤘다.

지난 20년 대한민국 최고의 낙후지역 경북 북부에서 지역 격차를 화두로 살았던 필자에게 깊은 공감의 시간이었다. 소득격차가 사회통합을 깨뜨리고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듯이 지역 격차 역시 유럽통합과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정치적 극단주의와 고립주의를 불러온다는 것은 유럽 지식사회의 일반화된 논점이었다.

굳이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독자들은 우리의 수도권 집중이 런던보다 더한 질곡을 만들고 있음을, 그리고 선한 의지의 국가가 초 집중된 권력과 권한으로 우리에게 떡 나누어 주듯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초·중·고 또는 대학까지 다닌 우리의 서울 친구들이 이제는 ‘대구 간다’를 ‘지방 간다’로 표현함으로써 스스로가 수도권 주민임을 확인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도시들은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지방’이라는 하나의 보통명사로 치환돼버린 이 현실 앞에 우리 지역 선남선녀의 분노와 좌절이 잉글랜드 북부 도시의 그것보다 가볍게 느껴지는가.

국내 유수의 은행들이 서울시내 몇 대학출신들을 선발하기 위해 채용과정에 부당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금융감독원의 발표 앞에 이제는 통용어가 되어버린 ‘지잡대’라는 신조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거주 지역이 새로운 사회신분이 되어버린 일그러진 대한민국에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차별금지법에 ‘지방’을 추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1990년대 이래 유럽에서 전개된 분권국가 전략에 의한 지역과 지역공동체(Community)를 사회운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흐름에 2011년 지역주권주의법(Localism Act 2011)으로 뒤늦은 대응을 시작한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지난 23년간 진행된 중앙행정업무의 지방이양 차원의 접근으로는 이미 저성장과 헬조선의 늪에 허덕이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앙정부의 선한 의지와 기획으로 지역을 다시 옭맬 것이 아니라 지역을 관리의 대상에서 주민에 의한 자치의 대상으로 독립시키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되도록 국가법체계의 최고위인 헌법에 명시하자고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이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국가의 미래희망에 대한 정치적 확신이 아니라 선거 시기의 수사였음을 느끼게 하는 최근의 국회 분위기는 지역의 독립선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사회 규범의 법적 최고 선언인 헌법에 권력분산의 핵심 전략으로 지역에 자치주권을 부여하는 담대한 패러다임 전환 없이 다시 중앙권력의 후견아래 치르는 지방선거는 지역주권의 담당자인 주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중앙의 대리인 파견을 위한 정치이벤트에 불과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지방소멸의 무덤을 더 깊게 파는 것이 되지 않을까.
황종규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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