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희의 독립극장] B급 며느리와 B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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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4   |  발행일 2018-02-14 제30면   |  수정 2018-02-14
[서성희의 독립극장] B급 며느리와 B급 영화
오오극장 대표

결혼 전 음력설은 그저 세뱃돈이나 챙기고 푹 쉴 수 있는 연휴에 불과하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음력설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음력설은 며느리에겐 최대 수난 시기다. 음력설뿐만 아니라 음력 날짜를 따지기 시작한 건 며느리가 된 후부터다. 결혼 후 갑자기 겪게 되는 과도한 가사노동도 힘들지만 대개 시댁과의 미묘한 갈등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풀기 힘든 수학 문제처럼 골치가 아프다. 우리 사회의 가장 뿌리 깊은 갈등 중 하나인 고부갈등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있다.

먼저 ‘수상한 그녀’는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을 위해 모든 삶을 희생했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노인네 신세가 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스트레스성 심장병 때문에 요양병원으로 좌천당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잔소리꾼 시어머니는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우연히 들어간 사진관에서 50년 전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자신이 젊었을 때 못다 해본 일들을 마음껏 하다 돌아온다. 자식을 위해 희생만 했지 정작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없었던 시어머니는 자신의 삶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자 며느리에게 훨씬 관대해진다. 한마디로 ‘수상한 그녀’는 판타지를 통해 고부갈등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A급 상업영화다.

또 한 편은 다큐멘터리영화 ‘B급 며느리’다. ‘수상한 그녀’가 시어머니의 갖은 참견과 잔소리를 참고 견디다 못해 화병이 생긴 며느리를 그리고 있다면, ‘B급 며느리’에 나오는 진영씨는 많은 며느리가 생각은 하지만 속으로만 삼키는 말들을 입 밖으로 다 내놓는, 한마디로 ‘되바라진 며느리’다. 이 영화를 만든 건 남편이자 아들인 선호빈 감독이다. 결혼 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 빈도가 점점 잦아지던 때, 처음에는 아내 진영씨가 집에 있는 카메라로 시어머니랑 자기를 찍어달라고 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상처로 남을 만한 잔소리들을 여러 차례 했는데, 정작 아들인 선호빈 감독 앞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고 한다. 그런데 다 찍어놓고 보니까 너무 재미가 있더라는 거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갈등구조를 담아내고 있다.

저예산이라는 측면에서 ‘B급 영화’인 ‘B급 며느리’류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사람들의 생활 모든 것을 담고 비교적 쉽게 영화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기다 A급 상업영화가 성취하기 힘든,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삶의 진실에 접근할 가능성도 크다.

지역분권 시대를 맞아 우리 지역 영상생태계를 건강하게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지역의 삶을 담아내고, 그러면서 할 말 다 하는 ‘B급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수도권의 메이저 시스템에서 제작되는 A급 상업영화와 다른, ‘B급 며느리’ 같은 생활형 다큐멘터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민이 다 함께 누리는 영상창작 교육을 활성화하고, 작은 영화관을 활용하여 시민의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유통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오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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