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공인인증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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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4   |  발행일 2018-02-14 제30면   |  수정 2018-02-14
정부가 디지털 안전마크를
나눠주겠다는 건 시대착오
인증기술 공정한 경쟁 위해
전자서명법 조속 개정해야
인증기관 용어도 수정하길
[수요칼럼] 공인인증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지난 1월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전자서명과 인증 기술이 활발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20년 가까이 유지된 공인인증제도는 암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서명을 국내에 널리 보급하였고, 3천500만건이 넘는 전자인증서가 발급되어 상거래와 전자정부 서비스 등에 이용되는 세계에 보기드문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정부가 동원한 강제 수단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기술 경쟁과 창의적 혁신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다. 정부 주도로 개발한 암호 기술을 법과 제도의 힘을 빌려 이용자와 업계에 억지로라도 사용하도록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과 부작용을 겪었다. 국내의 보안 환경은 기술, 정책, 법 그리고 사업적 계산이 어지럽게 뒤섞여 생겨난 ‘관치 보안’ 문화로 인해 기술 경쟁보다는 규정 준수에만 올인하는 불행한 사태가 초래되기도 했다.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하고 인증 기술의 공평한 경쟁을 보장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전자서명법이 개정되어야 실현가능하다. 국회는 법개정이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 제도적 강제와 정부의 ‘품질 보장’에 익숙한 이용자와 사업자들은 공인 제도 폐지에 대하여 다소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변화를 반기지 않는 업체들은 이 불안감을 최대한 과장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공인인증제도 폐지는 새로운 어떤 인증 수단 사용을 강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인인증서가 누리는 제도적 특혜를 폐지함으로써 그것을 포함한 모든 인증 수단들이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금융거래에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제해 왔던 제도와 규정들은 2015년에 이미 폐지되었다. 하지만 어떤 혼란이나 불편이 있었던가? 사용 강제 규정이 폐지되었는지도 모르는 국민이 대부분일 정도로 변화는 점진적이다. 사실은 강제 규정이 폐지된 덕분에 공인인증서를 사용 안하는 은행이 얼마 전에 생겨났고, 일부 이용자들은 그런 은행과 거래하기로 선택하였다. 새 방법이 더 불편하거나 불안하다면 일부러 그런 방법을 선택할 사업자는 없을 것이다. 강제 규정은 하루아침에 폐지되더라도 자발적 변화는 서서히 선별적으로 아무 혼란 없이 조용히 다가오는 것이다.

공인 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개정이 이루어지는 기회에 ‘인증기관’이라는 용어도 수정되기 바란다. ‘기관’은 권위를 암시하는 말이다. 사기업에 불과한 인증 업체를 ‘기관’이라 높여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금융 ‘기관’도 이미 금융 ‘회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현행 전자서명법에는 ‘안전성’ ‘신뢰성’이라는 말이 35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렇게 함부로 ‘안전성’ ‘신뢰성’ ‘공인’ ‘기관’과 같은 용어를 남발해서는 안된다. 인증 서비스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제도적으로 확산되면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 인증 업체의 방만한 서비스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제대로 구제받기 매우 어렵게 된다.

디지털 서명 보급 초기에는 ‘공인전자서명’이라는 일종의 ‘안전 마크’ 또는 마케팅 수단을 정부가 앞장서서 제공해줌으로써 국민들이 새로운 기술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고 변명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디지털 서명 보급이 필요한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서명 과잉이 초래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인 전자서명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또다른 이름의 ‘안전 마크’를 여전히 나눠주겠다는 발상은 20년 전에는 필요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자서명이 과연 안전한지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따져봐야 비로소 판단 가능한 것이지, 제도나 법령에 따라 ‘안전 마크’를 미리 박아둔다고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제도는 무고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배상받기 어렵게 만들고 인증 업체의 마케팅 편의를 봐줄 뿐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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