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에스닷 박기성 회장·박창준 대표이사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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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35면   |  수정 2018-02-23
아들이 이은 종합문구점…만드는 즐거움 주는 매장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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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에스닷을 운영하고 있는 박기성 회장(왼쪽)과 그의 아들 박창준 대표. 다양한 자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자수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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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닷으로 회사명을 바꾸기 전 대구문구센터의 외부 전경. <에스닷 제공>

1980~90년대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동성로에 있던 ‘대구문구센터’를 한두 번쯤은 찾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 앞의 작은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사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대구문구센터는 가장 번화가인 동성로에 5층짜리 큰 건물을 짓고 수많은 문구용품을 진열해 놓아 학생들에게 최고의 쇼핑공간이자 놀이공간으로 사랑받았다. 85년 대구문구센터를 창업한 에스닷 박기성 회장(70)은 “그 당시 대부분의 문구점에서는 손님이 어떤 물건을 달라 하면 주인이 그 물건을 찾아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가격표라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대구문구센터에서는 문구용품을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진열하고 가격표를 붙여두는 것은 물론 직접 필요한 물품을 찾도록 하는 등 새로운 판매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매장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대구문구센터는 대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대형마트, 백화점에서 문구용품을 취급하면서 대구문구센터는 변해야만 했다. 2001년 에스닷으로 회사명을 바꾸며 매장 구성에도 변화를 주었다. 2017년에는 박 회장의 아들 박창준씨(41)가 대표이사를 맡아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박기성 회장
“해외서 일할 당시 대형 문구점 경험
1985년 동성로 ‘대구문구센터’창업
만질 수 있게 상품 진열 폭발적 반응
작은 일이라도 고객 만족에 최우선”

박창준 대표이사
“IT 접목한 판매시스템 체계적 관리
종합문구점, 새로운 고객 못 끌어와
DIY·화방 차별화…갤러리도 운영
매장에서 아이디어 얻고 구매 연결”


▶대구문구센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기성 회장)“1970~80년대 해외에서 10여년 동안 일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 외국에 있는 대형 문구점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동성로에 그 당시로는 전국적으로 드물었던 종합문구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그 당시는 잘 볼 수 없던 시스템이라 대구문구센터는 유명해졌습니다. 상품을 고객이 만져볼 수 있게 진열해 놓은 것이 특히 폭발적 반응을 얻었지요. 기존 문구점은 카운터 뒤에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고객이 주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말하면 주인이 꺼내주는 형태였지요. 가격 정찰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르는 게 값인 방식이 아니라, 상품에 가격표를 붙여서 고객들이 바로 가격을 알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에스닷이라고 회사명을 바꾸었는데 이유가 있는지요.

(박기성 회장)“에스닷은 문구를 뜻하는 Stationery의 첫글자인 S(에스)와 방점을 찍겠다는 의미의 마침표(닷, dot)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문구에 대한 모든 것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문구 제품이 아니라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상품만을 취급한다는 의미로 ‘The Best Stationery’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닷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대구문구센터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사무실, 명함 등에 있는 ‘작은 일을 정성껏’이라는 사훈이 눈길을 끕니다.

(박기성 회장)“문구용품이라는 것이 대부분 크기가 작습니다. 이런 작은 용품이라도 정성껏 손님에게 판매해야 한다는 의미와 작은 일을 정성껏 하다 보면 큰일도 훌륭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박창준 대표이사)“2014년 에스닷에서 처음 일을 하면서 사훈을 보고는 ‘작은 일도 정성껏’이라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해보니 작은 일을 정성껏이라는 말이 맞았습니다. 흔히 사소한 것을 잘 보지 못하는데 이런 것을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큰일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이 작은 일입니다. 그래서 소홀하기 쉬운데 이런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다 보면 세상만사가 다 잘 풀리게 됩니다.”

▶가업을 잇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박창준 대표이사)“대학 졸업 후 10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하게 나도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회사를 만들었다 없앴다 했지만,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가끔씩 아버지께 에스닷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문구업계가 레드오션이니 새로운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운영되고 있는 사업을 지속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나을 듯하여 몇 번 더 말씀드렸고, 아버지가 허락해 현재의 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대를 이어 에스닷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박창준 대표이사)“에스닷이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30여년 동안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에스닷을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에스닷을 검색해 보니 다른 곳의 위치를 설명할 때 많이 등장하고, 정작 에스닷 자체를 얘기하는 것은 적었습니다. 그만큼 에스닷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아직도 90년대에 노트 팔고 볼펜 팔던 매장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DIY나 화방 등 차별화된 상품을 많이 구비하고 있고, 실제로도 정통 문구류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고객들의 머릿속에는 문구점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굳이 가볼 필요가 없는 매장, 이미 가봤던 매장, 근처에 있는 매장과 비슷한 매장이라고 인식되어 새로운 고객의 비중이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제가 구원군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 세대와 차별화하여 운영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박창준 대표이사)“예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유통에 IT를 접목하고 싶어 하셨는데, 그런 바람들을 하나씩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에스닷에 와서 한 일이 판매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상품 주문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매장 직원이 수첩을 들고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매대에 빠진 물건을 확인해서 매입처에 주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원 개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주문할 때도 반영되어 과다한 재고나 부족한 제품이 생기기 쉽고, 담당하는 직원이 신입이라 지식이 부족하면 상품 구성 자체가 엉성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현재는 IT를 접목해서 상품 관리를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매장이 대구에 2개, 대전에 1개가 있는데 앞으로 매장이 10개, 100개가 되더라도 에스닷 중앙로점에서 모든 주문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사업을 바탕으로 시대에 맞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듯합니다.

(박창준 대표이사)“아버지 세대에는 ‘종합문구점’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고객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가볼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문구점과의 경쟁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고객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경쟁, 즉 경계가 없는 경쟁이 치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객이 우리 매장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즐거움, 에스닷’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을 때 생각나는 매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즐거움’을 강조한 이유가 있는지요.

(박창준 대표이사)“요즘 잘 만들어진 상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고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잘 만들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것을 만들 때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고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런 만드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품이 명확할 때 고객은 인터넷에서 쇼핑을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희 매장을 한 번 둘러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내가 찾던 그 무엇인가를, 예기치 못한 인연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1층 출입구 옆에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창준 대표이사)“에스닷이 문구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한창 고민을 하던 때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작은 갤러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지키고 서있거나 멋진 건물 안에 있는 갤러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층 건물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지나가는 누구든지 밖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갤러리였습니다. 왠지 친근감이 가는 갤러리였는데 저희 매장도 이런 갤러리가 될 수 있을 듯했습니다.”

(박기성 회장)“기존 고객들이 공책 파는 에스닷이라 생각하는데 에스닷의 변화된 모습을 이 갤러리가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닷에서는 최근 화방용품을 특히 강화했습니다. 갤러리에서는 화가뿐 아니라 일반 학생이나 일반인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를 운영한 지 1년 정도 지났는데, 50% 이상은 학생의 작품을 전시하였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박창준 대표이사)“4층에 휴게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평상시에는 고객이 편히 쉴 수 있지만 공예, 미술 강사들에게 무료로 대여도 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에스닷에서 주도적으로 강좌를 진행해 봤는데, 지속적으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강사들이 주도적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이런 공간을 비롯하여 여러 방법을 통해 ‘에스닷=만드는 즐거움’이라는 공식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투박하지만 나의 시간, 나의 정성, 나만의 의미가 담긴 작품을 만드는 데 영감을 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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