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에너지 충전소] 도예가 장성용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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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38면   |  수정 2018-02-23
인적 드문 강가에서 허공 향해 뿜는 욕…스트레스 훌훌∼
20180223
스트레스가 꽉 찼을 때 장성용 계명문화대 교수는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하늘을 향해 마음껏 소리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위안도 얻는다고 한다.

‘명사의 에너지충전소’ 취재를 위해 장성용 도예가(54·계명문화대 교수)를 만나고 나서 잠시 취재를 계속 진행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 때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충전하느냐는 질문에 ‘욕으로 푼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가 더 있다. 도자기를 물끄러미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고도 했다.

속으로는 기사를 쓸지 말지 고민을 하면서 장 교수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욕하기와 도자기 보기라는 두가지 스트레스 해소책이 있으니 영 안되겠다 싶으면 도자기 보기로 방향을 틀면 된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장 교수의 그 호탕함과 자신감이 좋았다. 신문에 이렇게 욕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까지 했다.

장 교수는 하루가 26시간쯤 되는 듯하다고 했다. 도예가이니 무조건 시간 나는 대로 작업을 해야 하고, 교수이니 학생도 가르쳐야 한다. 이만이 아니다. 대학에서 총장보좌역과 계명문화창업보육센터장도 맡고 있다. 하루, 한 달이 어찌 가는지 모른단다. 이렇다 보니 정신이 없고 일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히 크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살아가는 일상
하늘 향해 하고 싶은 말 쏟아부으면
답답했던 마음 뻥 뚫리는 듯한 느낌
잘못한 점들 바라보는 여유도 생겨”


“정성다해서 구운 도자기 바라보면
느린삶 가치 깨달으며 평온 찾아와
세상에 부끄럽거나 화낼 일도 없어”


“대학 때부터 스트레스가 차면 혼자 여행을 떠났지요. 2~3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경치 좋은 곳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신세 한탄도 하고 저에게 스트레스를 준 사람의 욕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중얼거리면서 욕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큰소리로 그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섭섭한 점을 퍼부었지요. 저의 그 소리들은 금세 허공으로 사라지고 마는데…. 그런데 이렇게 하고 나면 신기하게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여행에서 남의 탓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뒤돌아본다. 내가 혹시 상대방에게 섭섭하게 한 것은 없는지,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는 아니었는지….

“화가 날 때는 나의 잘못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너무나 크니까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 자연을 벗하면서 내 속마음을 하늘을 향해 확 풀어놓으면 그러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 결코 상대방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저의 잘못을 바라보게 되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상대방을 만났을 때는 제가 먼저 다가가서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 잘 지내자고 말 합니다.”

장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타인들의 눈을 의식해 언행을 많이 조심하는데 이 같은 삶의 자세도 나쁘지는 않지만 때로는 자신의 속마음을 마음껏 드러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교수라는 사람이 이렇게 욕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면 웃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는 못 살잖아요. 그렇다 보니 가슴에 계속 쌓아두기만 합니다. 쌓인 게 너무 많으면 결국 마음의 병, 나아가 육체의 병이 옵니다. 마음이 아플 때 자신만의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로 어디서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마음껏 드러내는지가 궁금했다. 최근 학교 일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예전처럼 며칠씩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자신의 작업장이 있는 성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낙동대교를 비롯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작업장에는 주로 주말에 갑니다. 작업장 가는 길에 호젓한 곳에 살짝 들러서 경치 구경을 하면서 고함을 치지요. 평일에는 작업장에 갈 수 없으니 몇 년 전부터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스트레스가 꽉 차오르면 아주 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거기다 대고 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지요. 그 친구들도 이제는 만성이 되어서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오늘은 화가 덜 났나봐. 이렇게 짧게 욕을 하는 것 보니’라고 이해해 줍니다. 그런 걸 보면 친구도 저의 또 다른 에너지충전소지요.”

도예가답게 도자기와 흙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도 한다. 그는 도자기와 흙처럼 살면 세상에 부끄러울 일도, 화가 날 일도 없다고 한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다. 모든 과정에서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바쁘다고 급하게 작업하거나 순서를 뒤바꾸면 도자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나무나 철로 만드는 것은 잘못하면 수정이 가능합니다. 나무를 잘못 자르면 이어붙여도 되고…. 하지만 도자기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성형과정에서는 물론 가마에 굽는 과정에서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항상 작업을 할 때 차근차근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작업하는 과정도 맑은 마음으로 몰입을 해야 되니까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지만 완성된 작품을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최고의 가치다. 일분 일초라도 앞당기는 것이 능력이고 서둘러 일을 마쳐야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장 교수는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구우면서 느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빨리 가는 데 삶의 목표를 두고 늘 빠른 길을 택하다 보면 처음에는 좀 빠른 듯하지만 완주한 뒤에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을 그는 도자기를 보면서 얻는다고 했다. 작업장에 홀로 앉아 20~30분 도자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념무상의 상태에 접어든다고 한다. “최근 멍 때리기가 인기지요.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한 듯 앉아있는 상태. 도자기를 보면 이런 멍 때리기의 상태에 이릅니다. 도자기의 깊은 색과 향기에 빠져들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지요.” 여기서 그는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교수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이런 에너지가 긍정적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수업에 들어가면 ‘즐길 준비가 되었느냐’라고 말합니다. 수업도 재미있게 즐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학생들이 수업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것은 교수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입니다. 늘 재미있는 수업, 활기찬 수업을 하려면 결국 저부터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력하지요.”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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