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룡·서영춘·이주일…우리를 울리고 웃긴 예능史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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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4   |  발행일 2018-02-24 제20면   |  수정 2018-02-24
웃음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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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룡·故 배삼룡 등 주연의 영화 ‘철부지’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


일제강점기 신파극∼리얼버라이어티
시대를 담았던 韓 근현대사의 코미디
26년차 방송작가 생생한 경험 녹여내

1920년대 경성, 만담 하나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이가 있었다. 신불출이었다. 그는 공연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나머지 막의 내용을 예고편 정도로 설명하는 막설을 담당했다. 이때 그는 즉흥적인 유머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그날 관객 중에 천연두 자국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아유, 죄송합니다. 원래 마마 자국은 우박맞은 잿더미 같고, 아이 엉덩이에 낀 밤송이 같고, 금강산 만물상 같다고 하는데…”라고 하는 식이었다. 당시 매일신보의 분야별 스타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무용의 최승희, 판소리의 이화중선 등과 함께 신불출은 만담의 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으로 치면 ‘예능의 유재석’이었던 셈이다.

어느 시대나 사람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예능인들이 있었다. 웃고 싶은 사람들은 이들의 무대를 찾아갔고, 이제는 TV를 틀어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등장하는 유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웃음과 재미는 그 시대와 동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의 부제도 ‘시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웃게 한다’다. 예능인들이 보여주는 코미디는 그저 즐길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TV와 무대라는 형식 그 이면에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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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지음/ 웨일북/ 384쪽/ 1만5천원
책은 일제 강점기 신파극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 토크쇼까지 한국 예능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나간다. 26년차 방송작가인 저자는 방송 현장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도 녹여낸다. 각 장마다 아빠인 작가가 딸에게 들려주는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저자는 암혹했던 일제 강점기 사람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당시 악극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부 악극 공연을 마친 후 잠시 쉰 다음 2부에서 노래·댄스로 구성된 버라이어티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악극을 보면서 눈물과 콧물을 쏟아낸 관객은 2부에는 미친듯이 웃었다. 무성영화 시절 극장 무대 한편에서 영화 속 상황과 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던 변사도 인기를 누렸다. 같은 영화라도 변사마다 다르게 표현했기 때문에 변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영화의 재미도 달랐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억눌렸던 분위기에서 한층 벗어났다. 1965년 TBC(동양방송) TV 개국과 함께 대한민국 코미디의 1세대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당시 배삼룡은 “남이 안 하는 연기, 남이 싫어하는 연기를 꼭 해보겠다는 욕심이었다. 대부분 비극이던 당시 바보스러운 연기로 대중을 웃기는 연기자가 없었다”며 바보가 되기를 자청했다. 1980년대에는 희대의 개그맨 이주일이 등장한다. 1990년대는 버라이어티와 토크쇼가 대세가 된다.

2000년대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열리면서 시청자들의 욕구를 읽어낸 ‘무한도전’ ‘1박 2일’ ‘윤식당’ ‘효리네 민박’ 등의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저자는 ‘썰전’처럼 시사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을 모두 수용하는 최근의 예능 흐름도 짚는다.

저자는 권력이 코미디를 없앨 수 있던 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박정희정부는 코미디 폐지를 고려했지만,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 없이 폐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졸렬하다는 여론의 반대에 부딪힌다. 최근 대중문화인 블랙리스트 이슈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권력의 기분에 따라 미디어가 왔다갔다 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존폐, 코미디언의 생명이 왔다갔다 했던 시절이 대한민국에 분명히 있었다는 게 더 슬프다”고 말한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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