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미드 나잇 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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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6 07:59  |  수정 2018-02-26 07:59  |  발행일 2018-02-26 제20면
[행복한 교육] 미드 나잇 인 파리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퇴임한 선배 이야기다. 경상도 가문 꽤나 좋다던 그 견고했던 집안의 일급비밀이 ‘새가족의 탄생’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년 전 어느 날, 오십이 되도록 장가도 안간 남동생이 두 살 된 아기 하나를 데리고 왔단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는 손을 떨며 핏줄이냐고 물었고 남동생은 어이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뒤 가끔씩 미혼모라는 직원이, 사무실 4층 사장님 노모집이 놀이방도 아닌데 아기를 디밀었다.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집에 들이는 것조차 싫었던 노모와 남동생이 귀요미가 쏟아내는 탱글탱글한 표정과 언어에 매료되면서 어느 순간 잠자다 자주 깨어, 깊은 밤 두려움에 떨기를 수차례, 아기가 집에 들러붙어 살 것 같은 운명적인 예감이 들더라는 것이다. 쿨한 노모와 건조하게 살아가던 남동생 사이에 조금씩 삶의 균열이 생기면서 그 꼬장꼬장하던 노모도, 콧대 높던 누이도 아기를 받아들였고 그 미혼모를 예뻐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새 생명을 신의 선물로 기다리게 되었다고 했다. 듣고 있던 우리는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우린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이번에 가까이 알고 지내던 분들의 정년퇴임이 많았다. 조촐한 퇴임식이지만 한평생 교단에 섰던 사람에게, 이런 자리를 의미있게 하는 건 역시 제자들이었다. 특히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에, 기숙사 생활까지 했던 학생들은 여러 가정 사정과 자신의 실력과 원하는 대학 사이에서 매일매일 불안하고 힘든 고민을 선생님과 함께했다. 교사의 작은 배려와 특이한 몸짓과 말투에도 웃고 울며 함께 대한민국 청춘의식을 치르고 살았다. 학교밖에 몰랐던 당시 학생과 그들에게 푹 빠져 살았던 선생님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그 시절을 간직하고 있었다. 축하를 위해 먼 길 달려온 삼십 대 젊은이들에게 선생님은 자신이 꿈꾸고 순수하게 갈망하던 시절에 보내는 오마주인 것이다. 그 시절은 좀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36, 37, 38년 근무하면서 평일에 한 번도 연가, 병가 내지 않고 근무할 수 있었을까.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3월의 학교는 또 새로운 세상이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가 생각난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던 주인공 ‘길’은 동경하던 파리에 사랑하는 피앙새와 함께 왔다. 아름답고 빛나는 파리에서 밤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옛날 자동차가 나타나 마치 신데렐라가 호박마차를 타고 궁궐에서 왕자와 아름다운 축제의 밤을 보내 듯이 그토록 동경하던 1920년대 거장들과 위대한 작품의 창작혼을 교류하고 파리를 누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취향은 일치하지만 중요한 건 전혀 맞지 않는 부유하고 현실적인 약혼녀와 멀어진다. 상상력이라곤 없는 공허한 2000년대를 살면서 1920년대 파리, 그 황금시대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나 당시로 돌아가 보면 헤밍웨이와 피카소, 모네와 피츠제럴드도 불안하고 흔들리는 가난한 영혼이었으며 혼란에 빠지기가 일쑤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꿈꾸는 그리운 시대는 있다. 세상도 변했고 학교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인구폭발 시대에 태어났던 세대들은 앞만 보고 달렸던 그 20년 전을 황금시대였다고 한다. 헌신하던 생의 과업은 언제나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짐처럼 무거웠지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그 시절에 동경했던 꿈이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도덕경’에서는 인간의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 덕이라고 한다. 누구나 이 내부의 작용에 맞추면, 어떤 경우에도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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