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또 누구?”…떨고 있는 문화예술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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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6   |  발행일 2018-02-26 제27면   |  수정 2018-02-26
20180226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간 숨죽이고 있었던 피해자들의 폭로가 동시다발로 이어지면서 명예와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가해자들이 나락으로 곤두박질했다. 더 이상 숨을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문화예술계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이제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범죄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스캔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선 한 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미투’ 물결이 문화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폐쇄적 조직인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범죄라는 점이 충격적이었지만 여기에 불씨를 지핀 건 유명 연예인과 예술가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다.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상습적, 악질적 성범죄를 자행해온 이들의 민낯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간 우리에게 예술적 감흥과 휴식의 역할을 해왔기에 만천하에 드러난 그들의 추악한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와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름만으로도 사랑과 신뢰를 받던 주인공들이다. 공연계에서 존경받던 원로 연출가 이윤택, 오태석, 한명구,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이 최근 성범죄에 연루된 정황이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내부 지위를 악용해 성추행·성폭행을 일삼았다고 폭로했고 이 중 일부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이윤택은 기자회견까지 리허설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한 검사 고백서 시작돼 문화계 전반 번져
연출가 이윤택과 배우 조민기·오달수 등
성추행·성폭행 일삼았다는 폭로 잇따라
관련 작품 ‘보이콧’ 움직임에 출연 하차

모두 영향력 무기삼은 ‘문화권력’ 性범죄
“빙산의 일각일 뿐” 등 냉소적인 분위기 속
‘혹시 나도…’거명될까 전전긍긍하는 이도
도제식 구습·적폐청산 시스템 개선 목소리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로 인한 역풍을 우려한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댓글이 인터넷에 연일 쏟아지고 있고, 가해자들과 관련된 작품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도 있다. ‘대가’로 칭송받으며 정부 지원금을 타고, 방송에 나와서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의 모습으로 사랑과 부러움을 샀던 이들이 무대 뒤에서는 온갖 해괴한 짓을 하고 다녔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철석같이 믿었던 소속사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반기 조민기와 계약한 윌엔터테인먼트는 “조민기에 대한 성추행 관련 증언들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더욱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조민기는 앞으로 진행될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그들과 관련해 2차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의식해 조민기는 방영을 앞둔 OCN 새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하차했다. 제작사는 조민기가 촬영한 분량을 통편집하고 방영일 역시 3월3일로 미뤘다. 오달수가 캐스팅된 tvN ‘나의 아저씨’에도 불똥이 튀었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그의 촬영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하차가 결정되더라도 방송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달수는 현재까지 묵묵부답인 상태다. 한편, 조재현은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출연 중인 tvN ‘크로스’에서 하차한다고 밝혔다. 그는 16부로 기획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다.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적폐 청산의 계기로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는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로 볼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일을 배우고 꿈을 향해 나가기 위해선 여전히 존재하는 도제식 시스템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권력자가 된 스승과 선배들은 힘없는 이들의 꿈을 담보로 권력을 휘두르고 그 위에 군림하려 한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문화예술계에 이 같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소문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모두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무기 삼아 피해자를 만들어낸 경우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레 수치심과 두려움에 몸을 숨기는 성범죄의 특성상 그들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우후죽순 터져 나오는 익명의 폭로를 다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추문과 관련해 실명이 드러난 이들의 증언은 모두 구체적이다. 동시에 이와 연관된 피해자들의 증언까지 봇물 터지듯 이어지면서 신빙성을 높였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았다”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이유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까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혹시라도 잘못한 게 있었는지 뒤를 돌아보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투’ 운동이 문화계 물갈이, 세대교체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몇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도제식 구습과 각종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문화계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과 변화의 물결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여성 드라마 제작자는 “권력형 성범죄는 비단 문화계,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며 “다만 문화예술계가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분야인 만큼 이 기회에 사회 전체 미투 운동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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