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김보름을 왜 비난하나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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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8   |  발행일 2018-02-28 제30면   |  수정 2018-02-28
올림픽서 은메달 따고도
웃음 대신 사과한 김보름
코치·연맹 지시 따른 것뿐
그녀 인성 판단 근거 없고
누구도 미래 막아선 안돼
[동대구로에서] 김보름을 왜 비난하나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 사흘이 지났다. 아직도 눈에 밟히는 선수가 있다. 김보름이다.

김보름은 지난 24일 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초대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웃지 못했다. 링크에 태극기를 놓고 관중을 향해 두 번이나 큰절을 올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떠오르는 말이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다. 다른 말은 못 할 것 같다”라며 눈물지었다. 시상식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보름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세계 각국 선수들의 즐거운 파티장이 된 폐회식에도,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선수단 해단식에도 그녀는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올림픽 은메달을 딴 김보름은 스스로 죄인이 돼야 했다.

지난 19일 치러진 여자 팀추월 팀의 레이스와 인터뷰가 원인을 제공했다. 일부 국민들은 팀워크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보름의 인터뷰 자세까지 논란에 휩싸였다. 김보름과 관련된 기사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악성댓글이 뒤따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김보름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에 서명한 국민이 60만명에 육박했다. 다음날 빙상연맹이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보름은 국민들께 사과했다. 하지만 일부 국민들은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21일 치러진 팀추월 7~8위 결정전에선 한국 관중이 노선영의 이름엔 환호하면서도 김보름의 이름이 불릴 땐 차가운 반응과 야유를 보냈다.

그녀가 일부 국민들의 표적이 된 배경에는 노선영이 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동생을 비명에 먼저 떠나 보내야 했고 빙상연맹의 실수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뻔했던 노선영에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나라와 빙상연맹이 만든 피해자(?) 노선영을 챙기지 않은 듯한 레이스를 펼친 김보름은 한순간에 악(惡)이 돼버렸다. 오해를 불러올 만한 김보름의 인터뷰는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일부 국민들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하지만 “일부 국민들로부터 이토록 가혹한 비난을 받아야 할 만큼 김보름이 잘못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기자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정부가 곧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하니 머지않아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김보름의 그날 레이스는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다. 코치진과 연맹의 지시에 따랐을 것이다. 올림픽에 첫 출전한 20대 중반의 여자 선수는 코치진과 연맹의 지시를 거스르지 못한다. 따라서 비난의 대상은 김보름이 아닌 코치진과 연맹이다.

문제가 된 인터뷰는 “3명 모두 뭉쳐서 들어왔으면 준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 “중간에 있는 선영 언니는 비중을 최대한 적게 하는 전략을 짰는데 의사소통이 안 된 부분이 있다”라는 대목이다. “우리(김보름·박지우)는 잘했는데 너(노선영) 때문에 망쳤다”고 독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반성으로 읽을 수도 있다. 김보름을 비난하는 일부 국민들의 눈에는 후자가 보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일부 국민들은 김보름이 국가대표가 될 만한 인성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되묻는다. 국가대표는 어떤 인성을 가져야 하며 네티즌과 일부 국민들은 무엇으로 김보름의 됨됨이를 판단했는가. 인성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국가대표의 최고 덕목은 경기력이다. 이들이 김보름의 인성을 판단한 근거는 인터뷰 내용과 경기 후 엷게 미소 띤 얼굴, 노선영과 떨어져 있는 모습이 고작이다. 어떻게 하면 텔레비전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해지는 몇 마디와 몇 장면을 통해 특정인의 인성을 그렇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정말 그 대단한 능력을 배우고 싶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박약한 논리를 근거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를 짓밟으면 안된다.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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