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창원 돝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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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2   |  발행일 2018-03-02 제36면   |  수정 2018-03-02
우리나라 첫 해상유원지 ‘황금돼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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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가 된 미인의 섬, 돝섬.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유원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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돝섬 선착장. 섬 입구에 ‘복을 드리는 황금 돼지 섬 돝섬’이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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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오르면 맨 처음 황금 돼지상이 보이고 뒤쪽에 섬의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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돝섬의 장미정원. 멀리 빌딩숲 일대가 해운동이다.

“거기 서커스 했었잖아!” 실로 놀랐다. 서커스라니, 대체 어느 적 이야기란 말인가. “동물원도 있었는데 오만 동물이 다 있었지. 놀이기구도 있고. 엄청 유명한 곳이었어. 옛날에 버스 대절해서 8시간쯤 간 것 같은데, 또 배를 타. 바다 위에 유원지라니 얼마나 신기해.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유원지인가 그랬지.” 돝섬 이야기다. 옛날에는 마산, 지금은 창원. 이제는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이제는 서커스도 오만 동물도 없는 곳.

김해 가락왕 총애받던‘미희 전설’
돼지 누운 형상으로 변해버린 ‘돝섬’

서커스·동물 구경했던 해상유원지
2011년 자연친화적 관광지 재개장
숲길·산책길·꽃밭·조각공원 조성
꽃시즌 마다 많은 관광객들‘북적’


◆황금돼지가 된 미인의 섬, 돝섬

마산항에서 배를 탄다. 배에는 나와 뱃사람둘과 한 쌍의 연인이 전부. 목이 좁은 항아리처럼 오목한 만을 가르며, 배는 남쪽으로 달린다. 갈매기들이 쫓아온다. 동그랗고 깨끗한 몸과 크고 두꺼운 날개를 가볍게 띄운 갈매기들은 후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채자 곧 선회해 사라진다. 이심이 곶과 용호 곶 사이, 사방에 현대식 콘크리트가 빤히 보이는 바다 가운데에 섬이 있다. 동서로 길어 섬은 마산항 천연의 방파제다.

등이 낮은 섬이다. 숲 속에 희끗희끗 사물들이 보인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섬만큼이나 나지막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섬의 가장자리에 목걸이처럼 달린 출렁다리가 보이고 선착장에 몇몇 사람들이 조물조물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항구를 떠난 지 10여분 만에 섬에 닿는다. 섬 입구에 ‘복을 드리는 황금 돼지 섬 돝섬’이라 적혀 있다.

섬에 오르자 황금 돼지상이 먼저 보인다. ‘돝’은 돼지의 옛말이다. 원래는 어미돼지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돼지’나 ‘도야지’는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과 같이 본래 새끼를 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돝’은 잊혔고 ‘돼지’와 ‘도야지’가 어미돼지를 가리키게 되면서 돼지는 새끼를 가리키는 낱말이 사라졌다. 돝섬. 돼지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돼지처럼 생겼단다. 거북처럼 생겼다고도 한다. 돼지상 뒤쪽에 돝섬의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김해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 미희가 있었다. 어느 날 미희가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미희를 찾게 했다. 한 어부가 골포(마산의 옛 이름) 앞바다의 조그만 섬에서 절세미녀를 보았다고 왕께 고하니 과연 미희가 그 섬에 있었다. 신하들이 환궁을 재촉하자 미희는 금빛 도야지로 변해 무학산 큰 바위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후 사람이 까닭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생겼고 왕은 인성을 잃은 금빛 도야지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사들은 무학산을 포위해 금빛 도야지를 활과 창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한 줄기 요상한 기운이 섬으로 뻗어 사라지고 섬은 돼지가 누운 형상으로 변했다. 돝섬은 곧 황금 돼지가 된 미희다.

◆돝섬의 파도소리길

돼지상 왼쪽에 넓은 유리창을 가진 건물이 있다. 2층은 식당, 1층은 매점이다. 창가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연인을 흘끗 보며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을 걷는다. 출렁다리 안쪽에 너른 잔디광장이 있다. 여기서 서커스를 했을 게다. 무서운 피에로는 없지만 뾰족한 지붕의 천막은 어쩐지 그립다. 광장 옆 작은 건물은 최근에 마련된 실내 쉼터다. 돝섬 홍보관과 북 카페가 있다.

미희의 전설은 조금 더 이어진다. 이후 돝섬에서는 밤마다 도야지 우는 소리와 괴이한 광채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신라의 최치원이다. 당시 그는 마산 월영대(月影臺)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달밤 그는 섬의 광채를 향해 활을 쏜다. 광채는 두 갈래로 갈라져 사라졌고 다음날 화살이 꽂힌 자리에 제를 올리니 돝섬의 기이한 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광장을 지나 섬의 북서 가장자리를 돌 즈음 바다 저편에 유난히 높은 건물이 빽빽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 보인다. 마산해양신도시 서항지구로 그 뒤쪽이 최치원의 호를 딴 해운동(海雲洞)이다. 그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가 있다. 최치원의 시대에 월영대는 주변에 금모래가 깔린 아름다운 해변의 대(臺)였다고 한다.

섬의 북쪽 길로 접어들자 마산항과 마주보는 자리에 작은 요트 선착장이 있다. 여기서 배낚시, 요트, 래프팅 등을 즐길 수 있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군데군데 데크길이다. 곳곳에서 월영대를 노래한 옛 사람들의 시들이 불쑥 나타나 길벗 한다. 드문드문 조그만 자갈 해변이 있고 검은 갯바위 해안에서는 굴이나 홍합을 따는 사람들도 보인다. 때때로 숲은 우거졌으나 파도소리는 내내 가깝다. 그래서 이 길은 파도소리길이다.

◆섬 숲길 따라 테라스 조각공원

섬의 남쪽으로 돌아 나오면 가까운 숲속에 미니 동물원이 있다. 몇몇 조류가 전부다. 섬의 북동쪽이 파도소리 길이었다면 비교적 기울기가 완만한 섬의 서남쪽 면과 정상 부근은 숲길이고 산책길이고 꽃밭이자 조각 공원이다. 해발고도는 50m가 조금 넘는 정도지만 길은 풀어진 노끈처럼 길고 자유롭다. 무엇보다 흙길이 많아 걷는 감촉이 폭신하다.

돝섬은 1982년 민간 자본에 의해 건설되고 운영된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유원지였다. 사람들의 기억처럼 엄청 유명한 곳이었지만 19년 만에 폐장했다. 그러다 2002년에 ‘돝섬 가고파 랜드’로 재개장, 2009년 운영난으로 다시 폐쇄되었다. 섬은 2011년에 좀 더 자연과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듬해 ‘창원 조각 비엔날레’를 개최했고 이후 가을마다 ‘마산 가고파 국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금은 꽃 시절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추운 계절 낙엽수들의 헐벗은 모습도 아름답다. 산책로 곳곳에서 만나는 조각들은 잠시 이국의 정취도 느끼게 한다. 정상 가까이에는 온갖 종류의 장미들이 꽃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섬 언덕이 넓다. 예전에는 이곳에 하늘자전거가 있었단다. 지금은 1988년 올림픽을 기념하는 조각가 문신의 작품이 서있다. 마산 합포만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섬 어디에서나 고립의 자유가 있고, 섬 어디에서나 바다와 육지는 손끝에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기차나 버스를 추천한다. 동대구역에서 마산역까지, 대구서부정류장에서 마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1시간10분 걸린다. 역이나 터미널에서 마산항 제2부두 돝섬 선착장까지 택시비는 5천~6천원 정도다. 좀 무리를 해서 걸으면 1시간이 조금 넘는다. 돝섬 왕복 뱃삯은 대인 8천원, 소인 5천원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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