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낡은 창고의 재발견

  • 김형엽
  • |
  • 입력 2018-03-03 07:39  |  수정 2018-03-03 07:40  |  발행일 2018-03-03 제5면
창고문을 여니 새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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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조업체 창고 등을 활용한 북구 동천동 파리엔테스의 내외부 전경. <파리엔테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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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고성동 빌리웍스의 내외부 전경. <빌리웍스 제공>

서울에서는 옛 정미소와 공장 부자재창고 등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해 카페 겸 갤러리로 탄생시킨 ‘대림창고’(성동구 성수동)가 3년여 전부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대구에도 지난해 7월 북구에 파리엔테스가 문을 연 데 이어 빌리웍스, 강산맥주 등이 트렌디한 ‘창고형 점포’로 주목받고 있다.

◆옛 공간 특징 그대로

지난 1일 오후 대구 달서구 감삼동 죽전네거리 인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 뒤편 골목을 찾았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낡은 창고가 눈에 띄었다. ‘강산맥주’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여느 창고와 다름없는 외관이었다.

이 곳은 지난해 9월 문을 연 생맥주 전문점이다. 지난해 7월까지 식품업체가 창고로 쓰던 곳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겨찾는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젊은층 사이에선 이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공간, 중장년층에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산맥주·파리엔테스·빌리웍스
낡은 창고 개조 카페·술집 인기

외관은 그대로 내부만 세련되게
옛 정취 ‘물씬’…중장년층 호평
젊은층에게는 신선함으로 어필

제조업 도심탈출 늘어나는 추세
빈 창고 활용 대안으로 떠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영화 속의 ‘펍(PUB)’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높다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철근과 나무, 수십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목재 식탁이 있었다. 가게 한 쪽에서는 한 커플이 여유롭게 다트를 던지며 담소를 나눴다. 네모반듯한 빌딩 속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여느 가게와는 다른 ‘공간(空間)’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종석 강산맥주 사장은 과거 의류 수입업체에서 일을 하며 이같은 공간을 꿈꿔왔다. 그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운영하는 갤러리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보며 큰 영감을 얻었다.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1910년대 술 제조공장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이 사장은 “이탈리아에 있는 많은 건물은 외형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새롭게 바꾼다”며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가게 이름 또한 과거 부모님이 오랫동안 운영했던 가게 상호를 그대로 따 왔다.

미술대학 출신인 이 사장 내외는 오래 전부터 이곳을 눈여겨 봤다. 그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볼 때마다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5월 임대 전단이 붙은 걸 확인하고 이튿날 바로 부동산에 계약하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간의 본질은 유지한 채, 우리의 감성을 손님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다. 손님들이 이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만큼은 바깥 세상을 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테리어 비용 3분의 1 수준

지난해 7월 오픈한 ‘파리엔테스’(대구 북구 동천동)는 대구 최초 ‘창고카페’로 알려졌다. 패널 등으로 둘러싸인 297㎡의 넓은 공간에 식물과 커피콩, 몇가지의 그림을 놓아두는 것이 인테리어의 전부지만, 의외로 아늑한 분위기와 기존에 없던 독특한 형태로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곳은 기존에 간판 제작업체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서면서 덩그러니 남은 이 자리를 강대호 사장이 활용하겠다고 나선 것.

강 사장은 커피 동호회 등에서 활동해오며 드립커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 드립커피 본연의 맛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카페를 만들고 싶었고, 그러려면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는 “적자가 나더라도 시험적으로 커피맛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찾다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다”며 “인테리어 비용은 기존 카페의 3분의 1 정도만 들었다. 공간이 가진 특징과 특유의 분위기 만으로 인테리어가 됐다. 다소 밋밋해 보이는 곳에만 사진 액자나 재활용품을 활용해 꾸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규모가 크다보니 전기료나 청소를 위한 인건비 등 부대비용 지출이 상당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빌리웍스(대구 북구 고성동)는 현재 카페와 주차장으로 쓰이는 철강공장 창고, 폐교회 부지를 모두 합하면 전체 면적이 1천980㎡가량 된다. 교회로 쓰였던 지상 2층의 건물은 다소 낡은 듯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흰색으로 깔끔하게 페인트칠해 창고 공간과는 또다른 세련된 분위기다.

박용상 대표는 “카페를 차리기 위해 대구지역을 샅샅이 뒤졌는데, 최근 침산동이 많이 개발된 데 비해 고성동은 정체된 느낌이었다”며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도심 속에 방치된 건물을 재생시켜보자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다. 초기에 전기, 수도 설비가 잘 갖춰져있지 않았던 점을 제외하면 리모델링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역 제조업 점차 외곽지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던 대규모 설비를 갖춘 제조업체들이 임대료 부담 등으로 외곽으로 빠져나가거나, 점차 소규모화되는 추세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구지역의 건축면적별 공장(제조·부대시설) 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10년새 공장 규모는 크게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공장 중 1천㎡ 이상 규모의 비중이 상반기 기준 2007년 41.7%에서 2017년 38.8%로 줄었다. 반면 1천㎡ 미만 규모 비중은 같은 기간 58.3%에서 61.1%로 늘었다.

성서산단 관계자는 “오랜기간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고정비용은 오르는데 사업이 잘 안되다보니 문을 닫는 제조업체가 최근 많아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사업을 지탱하기 위해 공장 규모를 줄여나가는 추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은 “내수 의존도가 높은 지역 제조업체 특성상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이들이 임대료 등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외부로 빠져나가고, 상대적으로 운영부담이 덜한 서비스업종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문화적 공간이 생겨나는 흐름은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장은 “스페인 마드리드는 농공단지의 제조, 도축공간 등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문화공간들로 유명하다”며 “오랜시간 녹아온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 편리성을 더한 형태”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시설의 문화적 시설화 바람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김형엽기자 khy041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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