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당신이 내 맘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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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5 07:49  |  수정 2018-03-05 07:49  |  발행일 2018-03-05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당신이 내 맘을 알아요?

이젠 까마득한 2000년, 시청률 60%를 넘나들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을 역사 속에 푹 빠지게 했던 국민드라마 ‘태조 왕건’은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에서 더 주목을 받은 등장인물은 왕건이 아니라 태봉국의 황제 궁예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 대한 애휼로 미륵이라 불리며 칭송을 받지만 태봉국을 세운 이후 초심을 잃은 궁예의 말년 치세는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궁예의 말년, 공포정치를 위해 궁예가 사용한 것은 ‘관심법(觀心法)’이란 것이었습니다. 즉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 특히 역심(逆心)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실제 드라마 속 궁예가 “짐은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볼 수가 있어!”하며 노려보면 마음 약한 시청자들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실 가까운 부부 간, 부모 자식 간, 친구 간에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이는 뇌과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1972년 다마디안 박사에 의해 자기공명장치(MRI)가 만들어져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 뇌과학은 이 분야에서 커다란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뇌의 구조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뇌신호를 읽는 기술까지 가능합니다.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MRI를 이용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뇌신호를 읽어 그 사람이 뇌 속에서 어떤 영상을 떠올리는지를 재현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했습니다. 궁예가 주장하던 관심법이 과학으로 가능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뇌신호를 해독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는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심지어 2013년 일본에서는 자면서 꿈을 꾸는 사람의 뇌신호 패턴 분석을 통해 그 사람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를 해독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으니, 이제 할머니 이야기 속에나 나오던 꿈도둑 이야기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대화 없이도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최근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회장은 직접 키보드를 치거나 문자를 찍지 않고 사람의 뇌신호를 읽어 그 생각을 텍스트로 바꿔 페이스북을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저커버그 회장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미래가 올 것이라 말했습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 회장도 이러한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머스크 회장은 ‘Neuralink’라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이 회사는 인간의 뇌에 ‘neural lace’라는 작은 기기를 삽입해 인간과 컴퓨터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이 기술이 우리 곁에 온다면, 우린 우리의 생각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일도 가능하고, 반대로 모르는 지식을 바로 뇌속에 업로드해 활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기술이 충분히 성숙되면, 어쩌면 우리 인류는 육체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할 때 AI로봇에 우리의 생각을 전부 업로드시켜 계속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즉 영생이 가능한 것이죠. 육체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의 정신은 말입니다.

향후 몇 십 년 뒤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이 흥미롭고 기대되는 분들도 있지만, 불편하고 걱정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걱정을 해소하고자 최근 많은 뇌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신경윤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논의는 단순히 과학자나 기술자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의견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바로 그 기술을 활용하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관심술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기술이 여는 세상이 인간 중심의 세상이길 바라는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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