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춘곤증 이기는 제철음식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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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8면   |  수정 2018-03-09
봄 입맛 살려주는 주꾸미·바지락·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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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레의 주꾸미 샤부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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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멸치국수의 바지락칼국수·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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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회타운의 도다리쑥국·멍게비빔밥.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봄날이 오면 다들 노곤하다. 겨우내 잃었던 입맛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소화도 잘 되질 않는다. ‘춘곤증’이다. 이건 동절기 잔뜩 움츠렸던 우리의 신체가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피로 증상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봄 석 달을 ‘발진(發陣)’이라고 했다. ‘묵은 것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살려내는 시기’라는 말이다. 따라서 봄을 봄답게 우리 몸을 새롭게 살려내지 못하면 한여름에 면역력이 떨어진다. 제철음식은 보약이다. 제철음식 섭취는 우리 몸이 그 계절답게 살아나도록 도와준다.

팔도엔 자기 고장만의 봄맞이 음식이 있다. 심산유곡에서 고로쇠 수액을 받아먹고 봄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논두렁 밭두렁에서 캐온 달래, 냉이 등으로 봄나물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동절기에 짓눌려 있던 육체에 신춘의 땅기운을 재빨리 섭취시키려는 행위다. 통영·거제권에서는 해안에서 갓 캐온 쑥으로 끓인 ‘도다리쑥국’으로 봄을 맞는다. 경남과 달리 전남 해안권에서는 홍어 애와 된장을 섞고 거기에 웃자란 보리싹을 넣고 ‘보리싹홍어애국’으로 봄을 친견한다. 울릉도에서는 눈을 뚫고 나온 전호, 집 근처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부지깽이나물이나 엉겅퀴 잎을 된장 넣고 끓여 먹는다. 대구 시내에도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이 적잖게 포진해 있다.

산란기 앞둔 바지락 통통하게 살 올라
묵직한 국물의 깊은 맛 바지락 칼국수

주꾸미 통째로 넣고 데치는 샤부샤부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본연의 맛 살려

입안 쑥향가득 사르르 녹는 도다리쑥국
알싸하고 단맛나는 멍게 비빔밥 일품


▶통영멸치국수(바지락칼국수)(053)354-1515

살이 실하게 오른 바지락은 산란기를 앞둔 요즘이 제철이다. 살도 제법 통통하게 올라 있어 영양가도 최고인 상태다. 바지락은 진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도 있다. 바지락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조개류 가운데 가장 즐겨 먹었다. 바지락에는 타우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바지락에 많은 아연은 미네랄의 일종으로 미각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효능이 있으며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지락은 찜, 죽, 젓갈, 회무침, 수제비, 맑은국, 볶음 등 다양하게 이용되지만 바지락 하면 역시 칼국수가 제일 먼저 연상된다. 이 집은 껍데기가 두껍고 볼록한 살아 있는 바지락만 해감하여 쓴다. 넓고 옴팍한 그릇에는 잘박한 육수와 면과 바지락이 반반 담겨 나온다. 바지락으로 국물을 내서인지 묵직한 깊이가 전해진다. 적당히 짭짤하고 뒷맛은 달콤하다. 기분 좋은 듯한 매운맛도 있다. 굵고 울퉁불퉁한 면발은 부드러운 듯 탱탱함이 감돈다. 국물과 면발이 겉돌지 않는다. 적당히 간이 밴 면발은 쫄깃하고 국물은 구수해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주문과 동시에 별도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반나절 이상 해감한 바지락과 채소, 면을 넣고 삶아 내기 때문이다. 껍질째 붙은 바지락을 까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집의 바지락비빔밥은 바지락의 감칠맛이 매콤한 양념과 밥알에까지 스며들어가 있다. 바지락 살만 발라내어 양념한 것을 밥 위에 올려 준다. 씹히는 바지락 살은 쫄깃하다. 밥은 바지락 육수로 짓는다. 그래서 밥알이 차지면서 탱글탱글하다. 갓 지은 따뜻하고 구수한 밥과 함께 먹는 바지락 맛은 잊을 수 없다. 향긋한 돌미나리도 듬뿍 들어 있어 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곁들이는 바지락 미역국 한 그릇만 있으면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웬만한 보약 이상의 울림을 주는 곳이다. 북구 침산남로 172.

▶한다레(주꾸미 샤부샤부)(053)744-7113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한다. 주꾸미는 3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이다. 가을에도 잡히기는 하지만 맛이 떨어진다. 해마다 봄이면 주꾸미 축제가 열릴 정도다. 봄에는 꼭 맛보아야 할 음식재료다.

예전부터 낙지나 문어보다 주목은 덜 받았지만, 이맘때쯤 맛을 한껏 뽐내면서 사랑받는 주꾸미는 볶아먹고 구워먹는 것은 물론 숙회, 찜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맛을 그대로 즐기려면 즉석에서 팔팔 끓는 육수에 살아있는 주꾸미를 통째로 퐁당 넣고 살짝 데쳐 먹는 샤부샤부가 딱이다. 샤부샤부는 주꾸미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요리다. 사근사근하면서 달큰한 맛이 난다. 촘촘한 다리 부분의 껍질은 쫀득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살짝 익힌 청경채, 버섯, 배추, 미나리 등 갖은 채소와 잘 어우러진 국물이 식도를 훑고 내려간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주꾸미 대가리는 잘라내서 좀 더 익힌다. 대가리 부분은 충분히 익혀야 고소함과 쫄깃함이 더해진다. 너무 오래 익히면 뻣뻣하고 질겨진다. 살짝 익힌 다리와 몸통 부분을 먼저 먹는다. 씹을수록 탱글탱글 탄력이 느껴진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먹물이 육수에 보태지면 진하고 짭조름한 맛을 낸다.

주꾸미는 낙지와 비슷하다. 낙지보다는 다리 길이가 짧고 가지런하다. 새끼 문어와 흡사하다. 연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감촉이 특징이다. 주꾸미는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타우린은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고 눈의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조종사들은 시력 회복을 위해 주꾸미 달인 즙을 먹었다고 한다. 알이 찬 암컷은 대가리 부분이 노르스름하고 동그랗다. 쌀밥 같은 알을 가득 품고 있다. 살짝 데쳐 먹으면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이 집은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많지만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는, 진정 단골만 아는 집이다. 대로변에서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있는 주택을 리모델링한 자그마한 식당이다. 제철 재료와 당일 시세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랍스터 코스요리와 한여름에는 하모와 갯장어 샤부샤부, 겨울에는 새조개 샤부샤부를 주로 한다. 예약은 필수. 동구 국채보상로 869-6.

▶대산회타운(도다리쑥국)(053)751-3321

향긋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요즘, 이른 봄을 깨우는 도다리는 살이 제법 통통하다. 도다리는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흰 살 생선이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도다리는 자연산이 대부분이다. 양식 기간이 길어 양식은 경제성이 없다고 한다. 봄에는 도다리가 앉은 뻘을 건져 국을 끓여도 맛있다고 할 정도다.

특히 도다리쑥국은 춘풍화기(春風和氣)의 봄날, 화창한 기운을 뿜어내는 음식이다. 은은한 쑥 향기와 담백한 도다리의 맛이 어우러진다. 짓무른 여느 국과는 달리 살짝 데친 듯한 쑥에서 피어나는 쑥향, 그리고 살짝 익혀 특유의 육질이 그대로 전해지는 살점이 무기력해진 혓바닥을 잠 깨운다. 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린 여리디 여린 맛이 특징이다. 향긋한 쑥이 도다리의 비린 맛도 잡아주고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낸다.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연한 바다 빛깔이 감도는 맑은 국물 속에 잠긴 도다리 생선살도 잊지 못하는 맛을 준다. 국물 한 점에는 남해안 해풍이 점점이 맺혀 있다. 남도의 봄 바다를 그대로 국 한 그릇에 옮겨 놓은 듯하다.

육수에 무를 먼저 넣고 도다리를 넣은 뒤 쑥, 대파,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소금만으로 간을 한다. 이 집은 들깻가루를 넣어서인지 국물 색이 우유 빛깔에 가깝다. 햇쑥의 향긋한 향이 들깨와 잘 어우러져 들깨탕 같은 묵직한 맛을 낸다. 사르르 입에서 녹는 듯한 도다리와 너무 무르지 않은 달달한 무, 향긋한 쑥. 한 그릇의 보양식을 먹는 듯하다.

알싸하고 단맛의 멍게 비빔밥도 이 집의 인기 메뉴. 따뜻한 밥에 싱싱한 멍게를 연하게 양념하고 숙성시킨 멍게젓갈과 갖은 채소, 참기름, 김가루 등을 넣은 비빔밥은 한 숟가락을 머금으면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순식간에 입안 가득 전해진다. 북구 대불서길 16.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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