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나라타주·악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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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42면   |  수정 2018-03-09
하나 그리고 둘

★나라타주
스무살, 한번쯤 저질러 봄직한 감정


20180309

‘이즈미’(아리무라 가스미)는 대학생이 된 후에도 고등학교 시절 가깝게 지내던 연극반 교사 ‘하야마’(마츠모토 준)를 잊지 못한다. 졸업하기 전 편지로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그는 불행했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즈미를 밀어낸 적이 있다. 연극반 후배들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만난 그는 예전과 똑같이 매우 잘해주면서도 거리를 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이즈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친구 ‘오노’(사카구치 겐타로)가 옆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랑도 있다. 본인은 열병이라는 표현 그대로 너무 뜨거워서 앓아누울 정도인데 상대방은 미지근하기만 한, 그래서 더 큰 통증을 느끼게 되는 사랑이. ‘이즈미’의 현재로부터 시작해 과거와 대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나라타주’(감독 유키사다 이사오)는 그렇게 시선이 엇갈리는 세 남녀의 이야기다. 각각의 캐릭터가 빠져있는 감정이 잔잔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동안 140분의 러닝타임이 꽤 빨리 지나간다.


아내가 있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끌리는 마음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 친구가 있어도 잊지 못해


평범해 보이는 삼각관계 안에는 복잡한 상황과 감정들이 존재한다. 아내가 있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하야마에게 끌리는 이즈미와, 그런 이즈미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와주길 바라는 오노, 이즈미와의 관계를 깨끗이 규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하야마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감정 속에 방황하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세 인물들의 상황이 답답하고도 절절하다. 특히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이즈미에게 두 남성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준 하야마는 인생에서 갑자기 맞닥뜨리는 소나기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하고 싶은 존재다. 그녀 또한 늘 속을 알 수 없고 우울해 보이는 하야마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즈미가 아내와 완전히 헤어졌다고 거짓말을 한 하야마에게 화를 내는 욕실 신은 인상적이다. 이즈미는 물이 나오는 샤워기로 하야마를 공격하고 하야마가 그에 저항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물에 흠뻑 젖는다. 그들이 서로에게 계속 우산이 되어 줄 수 없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반면, 신발을 직접 만들어 선물한 오노는 이즈미에게 편한 신발처럼 언제 어디서든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다. 화창한 날씨처럼 밝은 그에게서 이즈미는 안정감과 따스함을 느끼지만 자신을 향한 과도한 사랑과 하야마에 대한 솔직한 질투가 두렵고 부담스럽다. 우산과 신발을 한 번에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즈미는 결국 맨발로 하야마에게 간다. 미래나 행복을 생각하기보다 철저히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그녀의 선택에는 무방비 상태에서 이별을 통보받은 오노의 설익은 반응처럼 스무 살이기에 한 번쯤 저질러 봄직한 순수함이 묻어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시마모토 리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설렘과 망설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 사랑 안의 다양한 순간을 선보인다. 프랑수아 트뤼포, 빅토르 에리세,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 헌사도 들어있지만 그들의 영화와는 또 다른 특유의 서정적 영상미와 오래 숙성된 깊은 감정의 맛들이 즐겁다. 잔인한 봄날과 잘 어울리는 멜로드라마다. (장르: 멜로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40분)


악셀
행성을 구하라, 꼬마 외계인의 모험


20180309

커다란 얼굴에 짧은 팔들, 얼굴 길이의 반밖에 안 되는 발 하나가 전부인 주인공 ‘악셀’과 그 친구들은 영락없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앙증맞은 캐릭터들의 모험은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꽤 진중하다. ‘악셀’(감독 레오 리)은 지구인들의 욕심 때문에 엉망이 된 우주 행성 ‘케플라’를 배경으로, 죽어가는 행성을 구하고자 집을 나선 외계 꼬마들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구인이 광기 어린 권력자로 묘사되고 외계 생명체들이 그에 대항하는 약자로 설정된 부분부터 흥미롭다.


지구인들의 욕심으로 엉망이 된 우주 행성 케플라
무모해 보이는 용기와 도전만이 마지막 희망 암시



악셀과 ‘주주’ ‘보노’는 전설 속 식물인 ‘카라로’의 씨앗만이 케플라를 살려낼 희망임을 알게 된 후 길을 떠난다. 카라로를 구하기 위해서는 용암이 끓고 있는 화산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역시 카라로를 노리는 악한 인간 ‘루이 바바’를 물리쳐야 한다. 악셀 일행의 모험은 아이들이 카라로 전설을 부인하던 아버지 세대를 ‘겁쟁이’로 치부하고 그로부터 독립하면서 시작된다. 주주의 아빠인 ‘가파치’는 ‘진짜 용기는 너무 위험’하기에 아이들이 지나치게 용감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주주는 안전을 염려하는 아빠의 마음을 알면서도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라며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아이들이 몇 단계의 장애를 넘어 목표를 성취하는 결말부는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새로운 세대의 무모해 보이는 용기와 도전만이 세상을 구할 마지막 희망임을 암시한다.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비장한 분위기에는 세상의 구원 혹은 변혁을 향한 절박함이 녹아 있다.

교과서적인 서사는 ‘악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후반부 다소 예측가능한 반전은 관객에 따라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캐릭터들과 대비되는 정교한 배경, 카라로의 환상적인 이미지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방불케 하는 액션 신, 장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음악까지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이다.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91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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