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세상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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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0   |  발행일 2018-03-10 제23면   |  수정 2018-03-10
[토요단상] 세상이 바뀌고 있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미투(#MeToo) 운동’을 통해 깨닫는다. 태풍이 몰려오듯 미투의 흐름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근래의 동향만 보더라도, 법조계에서 시작되어 문화계를 뒤덮고 대학과 정치권, 연예계 등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이 운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부문이 있기는 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이렇게 우리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는 미투 운동은 우리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투는 현재진행형 사태다. 미투라는 어려운 선언 아래 폭로되는 사건들이 일이십 년을 넘나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까지 걸쳐 있다. 동시에 미투는 미래의 사건이다. 이 상황을 제대로 겪고 넘어갈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사회가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훨씬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미투란 무엇일까. 하나하나의 사건으로서 그것은 성희롱 혹은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자 그에 호응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이어지고 대중의 관심과 동의를 폭넓게 얻어갈 때 그것은, 성희롱적인 말과 몸짓부터 시작해서 모든 성폭력이 범죄라는,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무시되어 온 사실을 공공화하는 움직임이 된다. 이러한 공공화가 실질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때, 곧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조치가 적절하게 취해지고 그러한 문제의 재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상황을 갖추게 될 때, 미투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미투 운동이 가져올 변화는 어떠한 것일까. 미투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이 운동이 억압되지 않는 한 궁극적인 결과는 예측해 볼 수 있다. 성폭력의 절대 다수가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 위에 놓인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폭력임과 동시에 부당한 권력 행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답은 자명하다. 일상생활에서의 권력형 인권 침해 범죄의 축소, 여성 인권의 향상, 남녀 간 불평등의 타파 등이 그것이다.

미투 운동이 가져올 이러한 변화는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인신의 자유가 현대적인 인권의 기초이고 사람들 각각의 자유의지가 부당하게 억압되지 않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이며, 지난 100여 년간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 온 것이 바로 이러한 현대화요 민주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문단이나 연극계의 원로가 끌어내려지고, 유망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던 정치인이 낙마하고 하는 일들은 큰일이 아니다. 그들이 사회 변화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닌 한 이러한 사태들을 두고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윤리와 예술, 윤리와 정치 사이의 간극 같은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냐마는, 생각을 복잡하게 하고 논지를 흐려서 저도 모르게 범법 행위를 옹호하는 언사를 할 그릇된 자유와 권위 같은 것은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한 언행은 미투를 외치는 피해자들에게 재차 폭력을 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투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운동 자체가 스스로 폭과 열기를 조정하며 전개될 수 있도록 일체의 다른 간섭이 없어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는 인권의 신장이라는 이 운동의 핵심에 직결되는 것이므로 당장 마련되어야 한다. 운동이 생산적으로 지속 발전되기 위해서는, 언론을 장식할 만한 폭로 대상이 아닌 ‘보통사람’ 같은 가해자들에게도 적절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는 조직적·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신고 시스템을 갖추고, 피해자 보호를 제도화하며, 가해자를 처벌하는 이 모든 움직임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될 시점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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