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리우올림픽과 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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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2   |  발행일 2018-03-12 제30면   |  수정 2018-03-12
경쟁적이면서 동지적인
긴장관계가 스포츠맨십
리우와 평창올림픽이 준
감동의 공통점은 바로
仁義를 통한 인간성 실현
[아침을 열며] 리우올림픽과 평창올림픽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2016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2018년에는 한국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브라질 내에서는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고, 국제적으로는 올림픽경기장의 미완성으로 많은 우려를 낳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대통령 탄핵 재판 중이라 나라 반쪽이 시끄럽고, 국제적으로는 ‘평양 올림픽’이라 하여 심기가 불편했다. 북한 때문에 한동안 나라 전체가 이래저래 술렁이기도 했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라는 독일 속담을 되새기면서 정치가 문화(스포츠)로 승화되길 간절히 바랐다.

스포츠란 승패를 겨루는 운동이다. 그렇지만 스포츠가 문화로 승화될 때 사람이 되고 인격이 된다. 인격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2016년 브라질 리우의 올림픽경기장에서는 5천m 여자육상 경기가 열렸다. 전체 경기의 열기보다는 두 선수의 애절한 스포츠정신이 경기장을 감동케 했다. 한 선수는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이고, 다른 선수는 미국의 애비 다고스티노였다. 이들은 시공과 인종을 초월한 올림픽의 인간애를 보여줬다. 400m 트랙 12바퀴 반을 돌아야 5천m가 되는 장거리경기에서 결승선을 4바퀴 앞두고 뉴질랜드 햄블린과 미국 다고스티노가 서로 부딪혀 햄블린이 넘어졌다. 이때 미국 선수 다고스티노가 혼자 달려 나가지 않고 멈춰 뉴질랜드 선수 햄블린에게 다가갔다. “일어나 결승점까지 달려가자. 이건 올림픽이잖아!” 하면서 일면식도 없는 그녀를 일으켜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엔 미국 선수 다고스티노가 느닷없이 주저앉았다. 그러자 햄블린이 “괜찮니? 뛸 수 있겠어?”라고 물으면서 다고스티노의 두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일어선 다고스티노와 함께 햄블린은 한껏 달렸다. 결국 뉴질랜드의 햄블린은 16분43초61, 미국의 다고스티노는 17분10초02로 결승선에 들어섰다. 먼저 골인한 햄블린은 나중에 도착한 다고스티노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들은 예선 탈락했지만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올림픽경기 감독은 이 두 선수에게 5천m 결선경기를 뛸 수 있도록 했고, 두 선수는 올림픽페어플레이어상을 받았다.

2018년 우리의 평창올림픽 경기장에서도 가슴 찡한 미담이 있었다. 결승선을 막 통과한 한국의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의 포옹 장면이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고다이라가 1위로 들어오고 이상화가 2위로 들어왔다. 고다이라는 태극기를 든 이상화를 향해 두 팔 벌려 포옹했다. 두 선수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몸에 두른 채 손잡고 함께 링크를 돌기도 했다. 함께한 관중과 세계인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더욱이 태극기와 일장기 이모티콘 사이에 ‘하트’를 넣어 양국의 우정을 드러내 보인 것은 평창올림픽의 백미 중 하나다. 아베 총리마저 일본과 한국의 두 선수가 부둥켜안고 서로 축하하는 장면을 두고 “멋진 광경”이라 했다니, 스포츠라는 문화의 힘이 정치를 한 방에 날린 셈이다. 올림픽정신이 경기를 통해 순수한 스포츠맨십을 실현케 하는 데 있음을 전 세계인에게 잘 보여준 명장면이다.

삶의 기본은 ‘예(禮)’하는 일이고, 예를 실천하는 두 방향은 ‘인의(仁義)’다. 먼저 인(仁)하고 그러고 나서 의(義)해야 하는 것이 인간성 실현이다. 그러나 경쟁의 스포츠세계에서는, 아니 오늘날 인간 삶의 경쟁사회에서는 결코 인의(仁義)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따라서 선의의 스포츠경기에서는 단(斷)을 우선으로 하되 의인(義仁), 즉 먼저 의(義)하고 그러고 나서 인(仁)해야 한다. 상대 선수와 맺게 되는 이중적 관계, 즉 경쟁적이면서도 동지적인 상호의 긴장관계가 스포츠맨을 스포츠맨십의 사람다움으로서 드러나게 한다. 의(義)는 공의를 낳고 공의는 관중의 감동을 낳으며, 인(仁)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관용과 포용 그리고 겸손까지를 낳는다. 이것이 지구 저편의 브라질에서 열렸던 리우올림픽과 여기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올림픽의 공통점이다.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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