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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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6   |  발행일 2018-03-16 제37면   |  수정 2018-06-15
은빛 설산이 품은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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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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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승객을 싣고 마젤란 해협을 건너는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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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테라 트레일의 고사목.
‘우수아이아(Ushuaia)’. 이름조차도 쓸쓸한 이곳은 ‘Fin del Mundo’, 즉 ‘세상의 끝’이란다. 이름에서 자꾸 ‘우수’어린 신음소리 ‘아이아’를 떠올리는 것이 세상의 끝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필 내가 찾은 시기가 남반구의 깊은 가을 4월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인구 6만여 명의 작은 도시지만 ‘세상의 끝’이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라도 가보고 싶었다. “세상 끝까지 가봤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토레스 델 파이네의 환상적인 경치를 가슴에 품고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우수아이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 2시간을 달린 후 푼타 아레나스의 ‘Ruta del Fin del Mundo’, 세상의 끝을 달리는 도로 위에서 다른 버스로 환승을 했다. 그리고 길이 끝난 곳까지 가서야 멈추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세상 끝으로 가는 바닷 길이 이어졌다. 마젤란 해협이었다. 버스와 승객을 실은 페리는 20분 정도 바닷 길을 달렸다. 파나마 운하가 열리기 전까지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분주한 항로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세상의 끝을 이어주는 한적한 길로 변했다. 페리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한동안 달린 후 차례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출입국 수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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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우체국(위)과 주정부 청사.

세상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해도 기울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평원이 펼쳐지더니 어느새 렝가나무 숲이 나타났다. 하늘을 향한 가지 끝은 하나같이 말라서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가지 아래에는 다시 노랗고 붉은 가지들이 뻗어 있다. 마치 앞서 자란 가지들이 뒤에 뻗는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듯한 모습이다. 그사이로 구름을 머금은 해가 바다 위로 차분히 내려앉는다. 이것은 일몰일까 일출일까? 내가 떠나온 북반구 그곳은 지금 오전 6시, 봄이 한창이겠지. 남반구 세상 끝의 지금 나는 오후 6시, 쓸쓸한 가을이다. 그럼 무엇이 일출이고 무엇이 일몰인가?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한 달 넘게 남미 대륙을 떠돌고 있는 나의 위치를 반문하게 만든다.

남극과 1㎞ 거리 세계 최남단 항구도시
영화‘해피투게더’빨간등대·펭귄투어
태초 지구 모습 ‘티에라…’국립공원
세상의 끝 우체국에서 쓰는 엽서 한 통
렝가나무마다 노래 부르는 딱따구리

중심가 산 마르틴 거리의 교회·학교
대대적 원주민 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
죄수들이 직접 지은 감옥도 아이러니


12시간 만에 마침내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3천94㎞라는 이정표가 세상의 끝을 실감케 한다. 은빛 설산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이 도시는 해안을 향하는 비스듬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 거리에서나 바다가 닿을 듯 가깝다. 우수아이아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에서 가장 큰 섬에 있다. 세계 최남단의 항구도시이며, 1832년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통과한 비글해협과 닿아 있다. 지도를 보면 칠레에서 이 도시만 툭 잘라낸 것처럼 보인다. 우수아이아는 남극과 불과 1㎞ 남짓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다. 그래서 남극에 대한 헤게모니 때문에 국력이 강했던 아르헨티나가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1884년 아르헨티나는 이곳에 해군기지를 설치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했고, 이후 이곳은 해군사관학교 학생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 실습지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아휘(양조위 분)의 눈물을 묻었던 빨간 등대나 펭귄을 보러 비글해협 투어를 떠날 수도 있고, 이름마저도 예쁜 에스메랄다 호수를 찾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밖에 없는 나는 국립공원 트레킹을 하고, 남은 시간은 시내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은 아르헨티나 유일의 해안 국립공원이다. 우수아이아에서 12㎞ 떨어진 이곳의 이름은 ‘불의 땅’이라는 뜻이다. 과거 스페인 항해자 마젤란이 이곳의 원주민인 야간(Yaghan)족들이 불을 피워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것이라 한다. 이들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충분히 추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짐승 가죽을 걸치지 않는 대신 불을 피워놓고 살았다고 한다. 이곳을 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관광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100여 년 전에 이곳을 개척하기 위해 철로를 놓고 죄수들을 동원해 벌목한 나무들을 옮기던 기차가 지금은 관광열차로 바뀌어 운행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택시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경제적이고 간편한 방법은 미니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개의 트레킹 코스 가운데 가장 무난하다는 편도 8㎞의 코스테라 트레일(Costera trail)을 선택했다. 코스테라 트레일은 라파타이아 만(Lapataia Bay)의 해안선을 따라 로까호수(Lago loca) 초입의 알라쿠시(Alakush) 방문자센터까지 이어진다.

해발 3천m의 화강암 봉우리를 덮은 만년설과 빙하, 호수와 원시림이 어우러진 티에라 델푸에고는 야생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져 태초의 지구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빨간 우체통이 놓인 세상의 끝 우체국이었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낸단다. 이 우체국의 소인만으로도 사랑이 세상 끝까지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간 날은 토요일이어서 휴무였다. 엽서를 못 보낸 아쉬움은 발길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으로 인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빽빽한 숲길을 걷다보면 다시 바다가 보이는 해안선이 나타나고, 이 길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붉은 숲길로 들어간다. 만년설과 푸른 바다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가을 경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새들은 이곳의 유일한 수다쟁이다. 키 큰 렝가나무 숲으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고즈넉한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새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 보니 나무를 쪼고 있는 딱따구리다. 이 나무 저 나무에서 돌림노래를 하듯 온 숲에 딱따구리 천지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딱딱한 렝가나무 껍질을 뚫고 하얀 벌레를 집어내는 부리의 놀림은 신성한 생존 의식 같다.

트레킹의 종착지 알라쿠시 방문자센터는 웅장한 목조건물이다. 식당과 휴게시설이 구비되어 있는데 전망도 멋지다.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두 아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2층의 전시실에는 야간족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은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6천년을 넘게 이곳을 지켰던 이들은 모두 몰살당하고 사라졌다. 정복자들에게 학살당하거나 그들이 들여온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살아남은 일부는 영국으로 실려가 교육과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인간 전시품으로 떠돌다 사라져 갔다.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남아있는 정복자들의 잔혹한 역사가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배인 슬픈 역사를 가슴에 담고 시내로 돌아왔다.

우수아이아의 중심가 산 마르틴 거리(Avenida San Martin)를 거닐다 만난 노란색 탑의 ‘자비의 성모마리아 교회’와 ‘돈 보스코 학교’ 등에도 원주민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었다. 백인들이 몰려들던 19세기 후반 야간족과 함께 학살에 내몰렸던 셀크남(Selknam)족에 대한 역사는 특히 끔직했다. 백인들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포상금까지 걸고 대대적인 인종 학살을 자행했고, 그 결과 4천여 명이었던 셀크남족은 1930년경에 불과 10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보다 못한 중앙정부는 살레지오 수도회에 셀크남족의 보호와 교화를 맡기게 되는데,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 이 교회와 학교이다. 셀크남족은 그 혈통을 지닌 마지막 인물이 1974년에 사망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세상 끝까지 이어진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에 할 말을 잃는다.

우수아이아의 역사와 원주민들에 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세계의 끝 박물관(Museo del Fin del Mundo)’도 지나칠 수 없었다. 우수아이아를 개척한 백인들의 역사가 원주민의 비극과 겹쳐지며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먹이를 쌓아놓고도 투망을 던진다. 아직 굶주려 죽은 사자는 지상에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이 아사한 동물은 사람이다.”(‘사자와 사람’)이라고 일갈한 임보의 시를 떠올린다.

감옥박물관(Museo del Presidio de Ushuaia)도 아이러니한 곳이다. 죄수들이 자신이 갇힐 감옥을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이 감옥은 190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380개의 방에 600명이 넘는 죄수가 있었던 곳이었다. 감옥 안에는 그 당시 죄수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형들이 있다. 세상 끝에까지 내몰려 자신이 직접 만든 감옥에 갇혔던 이들은 최고의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무거운 마음을 누르고 다시 가볍게 걷기로 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여느 여행자처럼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항구가 바라보이는 광장 가운데 서있는 ‘USHUAIA Fin del Mundo’ 간판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알마센 라모스 헤네랄레스 카페에서 초코라테도 마셨다. 다시 하늘이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길 위의 세상은 내 것인 것도 없지만 내 것이 아닌 것도 없다. 내 가슴에 주워 담기만 하면 모두 내 것이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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