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food&music] 대구 사필성밴드·고령뒷고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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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6   |  발행일 2018-03-16 제41면   |  수정 2018-03-16
“밥 줄게 공연해줘∼” 고깃집 게릴라 콘서트…손님은 금세 관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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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명동 ‘고령뒷고기’에서 영남일보 위클리포유 주최로 열린 음식과 음악 상생 프로그램 ‘식당콘서트’에 출연한 사필성밴드가 드럼통 식탁에 앉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10여분간 번개콘서트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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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고 미래도 없는 뮤지션. 그들을 위해 뭘 해주면 제일 좋을까? 그래서 새로운 연재물을 론칭했다. ‘밥 줄게 공연해줘’란 식당주와 뮤지션 상생 프로젝트. ‘뮤지션 기살리기 작전’이랄 수 있다. 식당주는 뮤지션의 음악을 소비해주고 대신 뮤지션은 게릴라형 ‘식당콘서트(식당락)’를 연다. 음식과 음악의 아름다운 동행, 뮤지션도 좋고 식당주도 좋은, 식당주와 뮤지션 간의 자매결연인 셈이다. 영남일보 위클리포유는 향후 이 지면을 통해 로컬 뮤지션과 식당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묶어줄 방침이다. 관심있는 뮤지션과 식당주의 많은 동참을 바란다. <편집자주>

20∼30代 모여 6인조‘사필성밴드’결성
동성로·수성못 등 ‘버스커 밴드’활동

평소 멤버들 단골가게서 색다른 시도
손님 꽉찬 식당 한쪽 구석이 임시무대
공연 시작전 가게사장·멤버도 긴장감
10여분 수준높은 공연선사 박수갈채


◆식당콘서트…대명동 고령뒷고기

지난 13일 밤 9시30분. 사필성(건반)·이경엽(기타)·박진호(카혼)·김동화(기타)가 대명동 프린스호텔 서쪽 골목에 있는 밴드 고정 뒤풀이 장소인 ‘고령뒷고기’(대명동·053-514-5333)에 속속 도착했다. 멤버 한승엽과 신지섭은 급한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기타 파트 조동엽 대신 이경엽이 나왔다. 사필성과 동갑인 도의한 사장. 그도 처음 시도해보는 공연이라 잔뜩 기대감에 취해 있었다. 테이블은 거의 꽉 찼다. 구석 자리에 있던 드럼통 식탁을 하나 치우고 임시무대를 겨우 확보했다. 멤버들이 악기를 꺼낸다. 드러머 박진호는 드럼 대신 나무통처럼 생긴 카혼을 다리 사이에 끼웠다. 사필성은 이것도 공연이다 싶어 88건반을 가져왔다.

일부 손님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무대 쪽을 기웃거린다. 첼로를 들고 귀가하던 2명의 경북예고 여학생도 뭔 일인가 싶어 길에 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멤버들은 다들 긴장초조. ‘민폐공연’이 될까 싶어 잔뜩 걱정하는 눈치다.

사필성이 심호흡을 한다. 이어 눈을 찡긋하며 공연 준비가 됐다면서 기자한테 사인을 준다. 나는 일어서 손님한테 이번 공연의 취지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다들 공감한다는 의미로 여기저기서 박수를 쳐준다. 사필성의 얼굴에 미소가 잔잔하게 번진다.

3곡을 연주했다. 모두 발라드. 손님이 관객으로 변한다. 어떤 이는 리듬을 타기도 하고 기자와 눈이 맞은 한 중년의 단골은 오른손으로 하트모양을 그려준다. 사필성은 자기 대표곡인 ‘두발로 일어선 아이’를 부를 때 시종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앙코르곡으로 내민다. 사필성은 늘 이 곡의 말미를 개사해서 부른다.

“그대여 저축하지 말아요 대출은 피해갈 수 없어요/ 그대 살빼지 말아요 그대는 원래 뼈대가 굵어요.”

옆자리에 앉은 김희숙씨(41). 그녀는 “고깃집에서 이 무슨 호사냐”면서 급호감을 보인다. 한때 음악활동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중년의 남자 손님은 “밴드 실력이 수준급인데 이런 식당에서 공짜로 듣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고맙다”면서 “연락해주면 이들의 콘서트에도 가보고 싶다”고 약속했다.

특히 도 사장은 “단골로 오는 밴드라고만 여겼는데 연주를 들어보니 상당한 것 같다”면서 “다음번에는 정식으로 뒷고기콘서트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밴드에 한턱 낸 그는 밴드 첫 앨범이 나오면 넉넉하게 구입해 단골한테 선물로 나눠줄 거라고 했다.

도 사장은 한때 고교 유도선수였다. 하지만 선수생활이 여의치 않아 오너셰프로 터닝했다. 이 식당은 돼지 등갈비, 뽈살, 목덜미, 항정살 등 특수 부위를 자기만의 소스로 절정의 맛을 낸다. 지방의 느끼함을 지우는 소스가 인상적이다. 마늘장소스, 콩가루, 양파장소스, 타레소스를 응용한 간장소스, 그리고 마지막에 막창 먹을 때 사용하는 막창장까지 구비돼 있다.

멤버들은 합주가 끝나면 여길 자주 찾는다. 모두 ‘고기광’. 하지만 약속한 것처럼 술은 입에 대지 않는다. 몸집이 장난이 아닌 사필성이 살갑게 고기를 구워 멤버한테 나눠준다. 마늘장소스에 찍어먹는 비계 한 점. 베이스 선율처럼 녹아든다. 그리고 소주 한잔이 리드기타처럼 포개진다. 다들 애드리브에 몰입 중인 뮤지션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멤버들은 이날 밤 11시까지 고기를 먹고 다시 심야 연습 때문에 자리를 떴다. 그래, 굿 푸드 이즈 굿 뮤직(Good food is good music)!

◆사필성밴드 이야기

지난 5일 오후 8시. 중구 대안동에 있는 예술공장 <주>‘빈칸’. 거기에 6명의 20~30대 음악쟁이가 모인다. 이들의 연주에는 ‘젊은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버하지 않는 상당히 느긋한 선율이다. 갑자기 한 슈퍼히어로 밴드가 생각났다. 1961년 2월21일 영국 리버풀 매튜 스트리트에 있는 ‘캐번 클럽(Cavern Club)’에서 역사적인 첫 무대를 가진 ‘비틀스’.

6인조 ‘사필성밴드’. 이 밴드는 사필성의 음악을 폭발시켜주기 위해 지난해 9월 탄생했다. 록밴드 계열이 아니다. 포크뮤직을 중심으로 한 어쿠스틱밴드 같다. 그냥 잽을 날리듯 연주한다. 여느 밴드와 달리 믹싱DJ를 기용했다. DJ 신지섭이 드럼과 건반, 기타 사이를 혓바닥처럼 몽환 적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팀워크가 더 농밀해보인다.

건반을 치며 노랠 부르는 사필성(37).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렸다. 그래서 언뜻 유럽 뒷골목 스킨헤드족 같지만 실은 아기공룡 둘리처럼 코믹한 구석이 많다. 덩치답지 않게 그의 보이스컬러는 카랑카랑하면서도 여리고 탄력적이다. 3명의 뮤지션이 오버랩된다. 유재하·스티비 원더·김건모다.

북성로와 종로 경계에 있는 빈칸. ‘멀티플렉스문화빌딩’ 같다. 공연기획 전문 사회적기업으로 공연기획, 영상제작, 공연제작 등을 책임지고 있다. 모두 17개의 부스를 갖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영화감독, 포토그래퍼, 연극인, 분장사, 댄서 등이 입주해 있다.

베이스 주자 겸 이 밴드의 리더인 한승엽(29). 대구예술대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재학시절 학교홍보밴드인 DAU의 밴드마스터였던 그는 현재 빈칸의 공동대표인 양동기와 함께 이 공간을 꾸려간다. 그는 가슴은 뜨겁지만 입은 참 묵직하다. 퍼스트 기타리스트 조영목(35)은 모차르트처럼 천재적인 유전자를 가져 ‘조짜르트’, 세컨드 기타를 치는 김동화(24)는 화성악을 제일 잘 해서 ‘김프로’, 믹싱DJ로 참여한 신지섭(37)은 평소 말이 없어서 묵언수행하는 줄 착각하게 만들어 ‘티베트여우’, 드러머 박진호(28)는 늘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해서 ‘착한돌아이’란 닉네임을 갖고 있다.

다들 기본 코드와 멜로디라인만 들으면 금세 연주가 가능한 프로들. 연주를 하면서 작곡을 완성해버린다.

이들은 실내보다 야외에서 더 격정적이다. 그래서 ‘버스커밴드’로 잘 알려져 있다. 동성로, 수성못, 김광석길, 대백 앞, 힘을 받으면 부산 해운대·광안리까지도 원정 간다. 여느 버스커와 달리 이들은 거리를 일순간 축제장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흥이 가득하다. 열정 또한 ‘살인적’이다. 지난 2년간 벌인 버스킹은 전국 최다급. 필을 받으면 하루 3~4회, 10시간 이상 공연한다. 눈비도 겁내지 않는다. 덕분에 2016년 해운대버스킹페스티벌에도 초대받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다들 버스킹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절감했다. 음악만으로 밥이 해결되고 무대에서 임종하는 것. 그게 이들의 꿈이다. 물론 사필성밴드 전용 클럽도 갖고 싶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알림 = 오는 30일 오후 8시 남구 대명동 ‘연탄꽃삼겹’(053-623-5455)에서 4인조 밴드 이글루(리더 장영은)의 ‘식당락’이 공연됩니다. 추후 식당락을 원하는 업소는 주말섹션부 위클리포유(053-757-5296)에 신청하면 희망 밴드를 연결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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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밤이면 사필성밴드는 중구 대안동의 한 연습실에 모여 오는 11월에 발매될 생애 첫 앨범 출시를 위한 맹연습을 한다. 5명의 멤버는 싱어송라이터 사필성이 작곡한 노래를 띄워주기 위해 기꺼이 열정을 합쳤다.

사필성 엿보기

슈스케·보이스코리아 오디션 ‘화제’
부산서 팀 공연 활동하며 인기 누려
4년전 대구로 와 김광석길 첫 버스킹
동성로·수성못 최강 로컬버스커 칭호


사필성. 그가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드럼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드럼을 시작했는데 텍사스 알링턴 출신의 대표적인 그루브 메탈밴드 ‘판테라’ 등의 노래를 들으면서 드럼을 배웠다. 노래를 시작하게 된 건 19세 때다. 두 개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했다. 하나는 ‘슈스케’, 또 하나는 ‘2012 보이스 코리아’. 슈스케 때는 100명에 뽑혔지만 오디션은 보러 가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빠서 행사 뛰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신 인터넷 영상 조회수가 높아진 덕분에 서울에 있는 기획사와 계약하고 2008년에는 ‘쇼타임’이라는 그룹으로 데뷔도 했다. 보이스코리아 블라인드 오디션 유튜브 동영상은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다. 인스타그램에 그의 이름의 해시태그가 900여개에 달했다.

사필성밴드를 결성하기 전 그는 ‘딴따라소울’, ‘엡템포’, 지금은 ‘센슈얼’이란 팀과 공연을 공유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도 머물렀다. 인기 가수 소찬휘가 하는 실용음악학원에 부원장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체질이 아니라 거리로 나온다. 한때 부산 광안리 최강 버스커로 나름 인기를 누렸다. 매일 중독된 듯 버스킹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져서 4년전 대구로 온다. 대구에선 처음으로 방천시장 김광석길에서 버스킹을 한다. 김광석 레퍼토리로 나름 팬을 확보하고 자신감을 갖고 수성못과 동성로로 나가서 짧은 시간내 최강 로컬 버스커란 칭호를 얻게 된다. 그가 나타나면 주변은 ‘노천춤판’으로 변한다. 그만의 ‘광기’ 때문이다.

현재 사필성은 ‘두발로 일어선 아이’를 가장 애지중지한다. 이건 사필성의 조카가 걸음마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만든 노래다. 어릴 때는 일어서면 박수를 받고 넘어지면 모두의 도움을 받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작은 실수에 얽매이고 도움을 주기보단 받기를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자는 의미에서 만든 노래다. ‘이별이 익숙한 그대’도 자주 품어준다. ‘세상에 사랑이 많을까 이별이 많을까’ 생각하던 중 짝사랑 때문에 이별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이별에 익숙해지지 말자는 의미로 만든 곡이다. 멤버들은 이구동성 “공연장은 흘러 넘쳐도 정작 밴드를 위한 눈높이 무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꼬집는다. 그래서 더 음악에 목숨을 걸고 싶단다.

사필성밴드는 오는 30일 수성못에서 자신의 곡을 알리기 위한 버스킹 무대를 갖는다. 그리고 7월 남구 대명동 ‘대구음악창작소’에서 콘서트, 오는 11월 생애 첫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다. 공연 문의 010-3534-482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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