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괴물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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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7   |  발행일 2018-03-17 제23면   |  수정 2018-03-17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괴물’은 2006년 개봉돼 1천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순한 괴수물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을 던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괴물보다 되레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괴물을 탄생시킨 것도, 그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도록 방치한 것도 결국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개봉된 좀비 영화 ‘부산행’ 스토리의 기저(基底)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좀비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괴물로 돌변한 인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괴물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주로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데, 흉측하게 생긴 괴물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너무나 멀쩡하게 생겼고 심지어 선량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신망과 존경까지 받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순진한 사람은 이런 철저한 위장술에 속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인간 괴물의 음흉한 본색을 알게 되더라도 마수(魔手)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가 가진 권력의 올가미가 크고도 단단하기 때문이다.

요즘 미투운동 열풍으로 인간 괴물들의 추악한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회 각계에 이토록 많이 암약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면면을 보면 정치인에서부터 법조인·연예인 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아마도 그들이 희롱한 것은 여성의 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라면 약자의 인권이나 사회의 도덕률쯤은 언제든 깔아뭉갰을 것이다.

오랫동안 괴물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그 주변인의 방관과 침묵 탓도 크다. 권력자에게 밉보이는 것보다 약자의 고통을 모른 척 하는 게 편했을 터.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중략)…(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우리 사회에 괴물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려면 미투운동의 폭이 더욱 확대돼야 할 것 같다. “나도 당했다”와 함께 “나도 봤고 들었다”로.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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