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성공사례 안동 성진골 가보니…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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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07:27  |  수정 2018-03-19 07:27  |  발행일 2018-03-19 제6면
달동네 성진골을 관광지로 변신시킨 건 돈이 아닌 ‘주민 참여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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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신세동 성진골 한복판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지역 주민과 동식물의 모습을 그린 벽화 10여 점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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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 ‘할매네 점빵’ 앞에서 성진골 주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의 국토정책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주요 정책사업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하지만 관이 주도하는 물리적인 환경정비는 장소 중심적 개발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이익을 위해 지역의 역사가 훼손되거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개발에 의해 땅값이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은 도시재생사업의 부작용으로 지적돼 왔다.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즉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 그대로 머물러 사는 것이다. 도시재생이 단지 공간 개조에 머물지 않고 원주민 삶의 공동체를 회복하려면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원도심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어우러져 낡고 쇠퇴한 마을을 생기 넘치는 마을로 변모시키고 있는 안동의 성진마을을 찾았다.

2009년부터 벽화 작업…10여점 완성
주민들이 페인트 칠하고 새참 챙겨줘
주말·휴일 100명이 넘는 관광객 방문

문화·관광행사 기획 주민협의체 발족
연고 없던 청년 6명과 힘합쳐 활성화
안동시도 편의시설 조성 등 적극 지원


◆소외된 달동네가 ‘산자락 미술관’으로 탈바꿈

“안동의 대표 달동네를 ‘벽화마을’로 변신시킨 건 막대한 예산이 아니에요. 마을 공동체가 도시재생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지자체에서 뒷받침한 덕분입니다.”

지난 5일 만난 김도선 안동시 도시재생전략과 재생사업팀장은 안동시 신세동 성진골의 도시재생 성과를 ‘민·관 합동의 결과물’로 설명했다.

김 팀장은 “도시재생의 핵심은 돈도, 건물도 아닌 사람이다. 어르신만 사는 시골마을에 수백억원을 들여 대공사를 벌인다고 유명 관광지가 되는 건 아니다. 낡고 쇠퇴한 마을에 활력이 생겨난 이유는 주민과 지자체가 머리를 맞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안동시 신세동 성진골은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주말과 휴일이면 100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며, 네이버와 다음 등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는 경북의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한다.

10년 전만 해도 성진골은 택시도 들어오기 꺼릴 정도로 소외된 산비탈 마을이었다. 영남산 기슭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120여 채의 낡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쪽방촌을 연상케 했다. 장마철이면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 등에 의해 주택침수가 잦았고, 주민들은 거액의 공사비 때문에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해 간신히 비가림만 하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이 마을 주민은 모두 223명, 평균 연령은 70대로 대부분은 기초생활 수급과 노령연금에 의지하거나 날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무렵이다. 안동대 미술학과 출신 이강준 작가(43·이강준 공공디자인 연구소장)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전국 공모사업에 당선돼 정부로부터 지원금 1억원을 받아 4개월 동안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 출발이었다.

마을 한복판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집 담벼락에 그려진 진달래·자작나무 등 벽화 10여 점과 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100m 크기의 벽화, ‘줄 타는 고양이’ ‘오줌 누는 개’ 등 우스꽝스러운 조형물은 안동의 구도심 가운데 가장 낙후된 마을을 ‘산자락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놨다. 벽화는 이 작가 혼자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생업을 제쳐 둔 채 페인트를 칠해 주고 끼니 때마다 새참을 해 준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성진골 주진도 통장(72)은 “노인들만 남은 곳에 청년들이 뭘 한다는 게 영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얘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특히 어르신들은 꿈자리가 사납다며 벽화작업에 반감을 가졌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설득한 끝에 주민들이 벽화작업을 수락했고 나중에야 동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과 노인들이 어우러져 불러온 나비효과

마을의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2015년 12월 마을의 문화·관광 행사 등을 기획하는 주민협의체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를 발족했다. 이 협의회는 그림애장터와 월영장터 등 다양한 마을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협의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문화관광 분야 일을 기획하는 청년들이 하나둘씩 유입됐다. 장터 행사에서 인연을 맺은 청년 6명이 마을에 둥지를 틀게 된 것.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안동에 연고가 없었다.

협의회에서 마을 활동가를 맡고 있는 조민형씨(36)는 “서울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우연찮게 안동에 형성된 신도시에서 커피전문점을 열게 됐다. 연고가 없어 안동지역 프리마켓을 돌며 홍보를 했다. 그러던 중 성진골 어르신들과 친분을 맺고 안동에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그런 인연으로 1년 만에 가게를 성진골로 옮겨 마을 주민이 됐다”고 말했다.

조씨의 아내 신경진씨(31)는 남편의 사연에 감동을 받아 최근 서울에서 안동으로 내려왔다.

신씨는 “고령화가 심한 안동은 청년들이 발 붙이고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더라. 지난 1년간 성진골에서 보낸 삶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덕분에 마을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공동체가 된 청년들과 기존 주민들은 마을 관광과 행사 등의 수익금을 마을 복지에 쓰기 위해 지난해 11월 그림애문화마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을 위한 일을 함께 도모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이들은 최근 장터와 크라우드펀딩 대회에서 마련한 상금과 수익금, 안동시의 지원 등으로 ‘할매네 점빵’이란 가게를 열기도 했다. 이곳에선 수공예품을 비롯해 가죽공예·생활소품·마을 기념품·먹거리 등을 판매한다. 할머니 6명이 돌아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판매수익금은 마을 복지를 위해 환원하기로 했다.

마을공동체 재건을 지켜본 지자체도 도시재생을 위해 힘을 보탰다. 안동시는 2014년 도시재생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마을 지원에 나섰다. 성진골에 창업공방육성촌을 조성하는 한편 마을의 폐가를 매입해 공중화장실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만들어줬다. 이 과정도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주민 주도적인 도시재생을 뒷받침하고 있다.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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