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건조하거나 까칠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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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07:46  |  수정 2018-03-19 07:46  |  발행일 2018-03-19 제15면
[행복한 교육] 건조하거나 까칠하거나
김희숙 <대구 도원중 교감>

“지배욕이 강하며 고집이 센 편입니다.” 담임 이야기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과 대화하지 못한다. 화가 치밀어 올라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다가 무너진다. 그래서 주 5일 야간당직 경비를 서지만 정작 금요일 밤에 집으로 가지 못한다. 주말이 시작되면 자퇴한 못된 형들과 온갖 일탈행동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중2 아들을 더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픈 친정 동생을 돌보느라 늘 어두웠던 아내는 병이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년 더나은삶의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면 2012년 24위로 하위권이던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 순위가 38개 국가 중 29위로 더 내려왔다. 척도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느냐’는 항목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한 자식이 집안에 있는데 외롭고 피곤하다.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며 사는 삶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되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막막함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아이가 쉽게 그 삶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운 것은 아이는 감정적으로 평온하다는 사실이다.

4번의 도전 끝에 교사가 된 아들 친구 이야기다. 친구 현수가 부디 좋은 선생님과 학생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수는 낯선 경기도 변두리의 부임지로 가던 첫날, 좌절과 피로에 절었던 20대가 떠올라 가슴을 움켜쥐고 걸었다고 했다.

특성화고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일반계고였다. 교장 선생님은 주요 과목에 신규가 왔다고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고 바쁜 교감은 업무 희망서를 쓸 것도 없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기피하는 업무가 주어졌고 수업시수도 제일 많고 학년도 걸치게 배정되었다. 그 펄떡이던 등 푸른 스무 살일 때 절친에게 술 한 잔 살 돈이 없었다. ATM에서 돈을 찾는다고 해서 뒤에서 기다리면, 충격적이게도 만 원 이상을 찾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임용시험 공부를 하면서도 경력이 없어 기간제 교사에서도 탈락하고 몇 개월씩 노동을 하고 이제 막 교단에 섰다. 아직 아무도 현수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경쟁을 통한 고도성장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고 공감하며 손을 내밀어 줄 여력이 없었다. 심지어 목표지향형인 리더 중에는 개인의 성공과 만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관계 구조상 약자인 아랫사람의 인격을 공격하며 지배하려고 하면서도 그들에게 준 고통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다. 교직사회도 경계를 치고 공동체 의식 없이 열정을 접고 교육자가 아닌 직장인이 되는 사람이 늘어간다.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려움을 늘어놓으면 ‘아, 본인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네’라며 하소연하는 동안 편안하게(?) 듣는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것도 없다. 이해관계가 얽혀 좀 신경 쓰이면 건조하고 더 까칠하게 대함으로써 상대가 나에게 바라던 온정을 스스로 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피로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게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향하던 관심은 애완동물과 피규어, 자기애로 무장하고 혼자 놀기도 익숙해져 여러 사람과 골치 아프게 신경 쓰이는 소통을 피한다. ‘평온한’ ‘무관심’ 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점점 그렇지 않던 사람들조차 점점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는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눈에 들어오고 아프고 그래서 희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기 싫은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단단하고 깔끔한 선생님들이 더 자기를 사랑하고 야무지고 쿨하게 살기 위해 아프고 혼란스러운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희숙 <대구 도원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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