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웃기는 사교육비 통계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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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0   |  발행일 2018-03-20 제30면   |  수정 2018-03-20
[취재수첩] 웃기는 사교육비 통계

지난해 초중고생 1인당 사교육비가 월평균 27만1천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구는 30만원으로 서울(39만원) 다음으로 많았다. 최근 통계청과 공동으로 사교육비 실태를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한 교육부는 10년차 조사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과 교과보다 예체능 증가세가 뚜렷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영어 사교육비가 줄어든 대신 국어가 크게 늘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사교육비가 27만원이라는 대목이다. ‘단돈 27만1천원’으로 고교생 학원비를 충당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만세’란 우스개가 흘러나온다. 조사기관은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까지 포함해 평균값을 구한 것이어서 실제 사교육비보다 낮게 나타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도 못하는 사교육비 조사를 하는 명분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인터넷 공간에는 분통을 터뜨리는 학부모의 글이 넘쳐난다. 한 학부모는 “1인당 사교육비가 27만원? 수학 하나만 해도 30만원이 넘는다. 두 과목이면 60만원이다. 숫자로 장난치는 통계청 필요 없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대구 수성구의 경우 국·영·수 단과 학원의 수강료는 과목당 30만원 선이다. 주 1회 3시간에 이 정도다. 수강 시간이 늘면 비용은 더 올라간다. 비수성구는 수성구보다 수강료가 낮지만 학생들이 몰리는 학원이라면 그 차이가 5만~10만원이다.

정부의 사교육비 조사 결과와 현실의 괴리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사교육 문제가 단칼에 해결되길 기대해서가 아니다. 이쯤 되면 국민도 다 안다. 한국에서의 사교육, 즉 교육열은 어느 날 문득 정부정책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교육열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거대한 욕망이다. 오죽하면 어느 진보성향의 학자가 한국의 교육열을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와 같은 욕망의 덩어리이자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필사의 몸부림”이라고 정의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교육현장은 뭔가 새롭게 변하려 할 때 전쟁터가 되고 만다. 정책이 바뀌어 자녀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끝장이라는 두려움도 깔려 있다.

한국의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좀 더 높은 계층으로 이동하고, ‘사’ 자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군림하고 있다. 정부는 ‘교실 혁명, 공교육 혁신으로 사교육을 잡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열 달이 지나도록 무엇을 했는가. 지난해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하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교육현장에서 반발이 거세자 없던 일로 하고 연기했다. 최근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을 금지하려 했으나 학부모 반발로 1년 유예했다. 이처럼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흐지부지되니 학생은 불안한 나머지 사교육에 더 의지하는 것 아닌가. 불안감을 조장해 마케팅을 하는 입시업체를 단속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더욱 허황하게 들리는 이유다.

묻고 싶다. 정부가 꿈꾸는 교육의 큰 그림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로드맵이 있는지. 숫자놀음에 불과한 사교육비 조사를 하는 시간에 이런 준비를 좀 하길 간곡히 청한다.

이효설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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