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마음의 빚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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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0   |  발행일 2018-03-20 제30면   |  수정 2018-03-20
경제·문화·스포츠로 가깝고
혼인으로 맺어진 ‘사돈국가’
유달리 밀접한 베트남에
진심 어린 예의를 갖추고
미래 향해 좋은 관계 유지를
[화요진단] 마음의 빚

지난 12일 오전 언론에 종사하는 후배로부터 베트남 커피 한잔을 대접받았다. 평소 즐기던 인스턴트 커피와는 달리 구수한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날 오후 뉴스검색을 하니 공교롭게도 농협 중앙회가 다음달 베트남 농협과 잉여 국내산 사과를 베트남산 커피 원두로 맞바꾸는 ‘바터무역’을 추진키로 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농협이 해외농협과 직접 교역을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2011년 국내에서 개봉돼 745만 관객을 모은 영화 ‘써니’의 베트남 버전인 ‘고고시스터즈(Go-Go Sisters)’가 베트남 박스 오피스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면서 역대 베트남 로컬 영화 톱3이자, 한-베트남 합작영화 1위에 랭크됐다는 뉴스도 눈길을 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전역을 방송권으로 하는 하노이TV 취재진이 봉화군 봉성면에 있는 베트남 리왕조의 유적인 화산이씨(花山李氏) 충효당과 봉화군이 추진 중인 베트남 역사공원과 베트남길 등을 취재했다고 한다. 또한 롯데카드가 베트남소비자금융회사 인수 소식에 이어, K-water가 베트남 수자원 관련 기관인 수자원계획조사센터, 지방상하수도공급자와 차례로 ‘베트남 스마트 물관리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소환을 앞둔 데다 북핵 관련 뉴스와 미투 등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관련 뉴스가 이날 하루 동안 이만큼 쏟아진 것은 이례적이다. 인구 1억명에 가까운 베트남은 우리와 참으로 가깝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수교한 지 25년 만에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교역 1위, 투자 1위, 개발협력 1위 국가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 국가다. 베트남 입장에선 한국과의 교역량이 620억달러로 미국을 제치고 한국이 교역국 2위로 상승했다.

이처럼 아세안 국가 가운데 베트남이 유독 한국과 밀접한 원인은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세기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과거 한국인 교수에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아름다운 풍습인 효·경로사상을 서구에 전해주십시오. 저도 돕겠습니다. 세계가 멸망해서 지구를 버리고 떠날 때 지구에서 가져가야 한다면 바로 효도문화”라고 말한 바 있다. 1975년에 별세한 토인비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베트남의 효도문화도 끼워넣었을 게 분명하다. 중국과 접경한 양국은 열강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다. 반도국가의 숙명이기도 했다. 그 이후 격렬한 내전을 겪은 것도 흡사하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양국이 살아남은 원동력은 유교에 기반한 효사상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썸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주관한 대회사상 동남아국가 최초로 8강에 오르고 23세 이하에서 준우승을 거두게 한 박항서 감독이 양국 간 연애감정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베트남 아잉홍(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니 참으로 뿌듯하다.

우리는 베트남과 ‘불행했던 과거’를 갖고 있다. 이유는 불문하더라도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큰 피해를 입혔다. 전쟁 피해뿐만 아니라 우리의 피가 섞인 라이 따이한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게 그 증좌다. 최근에는 수많은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고 있다. 이미 자식들이 장성해서 군에 입대를 한 가정도 있다.

과거 전임 대통령 몇 분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한 적이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에 베트남에서 마음의 빚에 관해 언급했다. 참으로 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속내는 어떤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해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는 내려졌지만 마음속에는 오만함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베트남은 우리와 이미 ‘사돈국가’가 됐다. 다음 세대에겐 베트남인의 피가 흐를 수밖에 없다. 사돈은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다. 진심어린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아픈 곳을 건드리지 말고 미래를 향해 좋은 관계를 견지해야 한다. 가해자로서 반성조차 없는 일본처럼 처신해서는 안된다.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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