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비교생산비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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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0   |  발행일 2018-03-20 제31면   |  수정 2018-03-20

영화 ‘건축학개론’은 뭇사람의 첫사랑 추억을 소환한 꽤 괜찮은 작품으로 꼽힌다. 필자에겐 무역학개론에 얽힌 기억이 유별나다. 대학 1학년 때 전공 필수과목으로 무역학개론을 수강했고, 대학원 졸업 후엔 강의를 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고 가르친 내용이지만 지금 뇌리에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이 새삼 와닿는다.

한데 유독 또렷이 각인된 대목이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이다. 각국이 노동생산성의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을 집중 생산해서 수출하면 모든 무역 당사국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아담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과 함께 자유무역의 근거를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절대생산비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무역을 달리 표현하면 국제분업이다. 아담 스미스는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이 가져오는 생산성 증가 효과를 설파하고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좌우된다고 봤다. 또 분업은 기술개발과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까닭에 재차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시장 규모를 키움으로써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실제 기원전부터 18세기까지 수천 년 동안 별 변화가 없었던 세계의 1인당 실질소득은 짧은 기간 내 수십 배 늘어났다. 산업혁명과 자유무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선회로 글로벌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수입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15%를 차지하는 반면 무역적자는 약 3%를 차지한다”며 트럼프를 ‘무식한 무역 매파’라고 비난했다. 짐짓 보호무역주의가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30년대 대공황을 심화시킨 주범 중 하나도 보호무역이다. 1929년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해 수입 공산품에 최고 40%의 관세를 물렸다. 이는 유럽·아시아의 보복관세를 촉발했고 3년 만에 세계 교역량은 25%나 줄었다. 교역량 감소의 덤터기를 고스란히 쓴 나라는 미국이었다.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국제무역이 세계의 생산성과 부(富)를 늘린다는 것은 이미 실증된 경험칙(經驗則)이다. 그래서 트럼프를 멍청이라고 비꼰 크루그먼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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