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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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1   |  발행일 2018-03-21 제30면   |  수정 2018-03-21
이번 지방선거서 무너지면
보수 다시 못일어설 가능성
與野 불균형 민주주의의 賊
小利에 안주하면 미래 없어
野 큰 그림 그리려는 노력을
[수요칼럼]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의 추억
황태순 (정치평론가)

그제(19일) 저녁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110억원의 뇌물과 350억원 비자금 횡령 등 12개 혐의다. 구속영장 청구서만 207쪽, 구속 사유서는 1천쪽이 넘는다고 한다. 내일(22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있다. 현재 분위기로는 MB의 구속은 불가피해 보인다. 두 전직 대통령이 함께 구속·수감되는 참담한 모습이 연출될 것이다.

마침 MB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오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검찰에 출두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모습이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MB는 대승을 거두고 진보정권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왔다. 그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은 폐족(廢族)을 선언했다. 폐족, 즉 조상이 죄를 지어 더 이상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탄한 것이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다. 다음 해인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안희정은 충남도지사에 당선, 친노의 부활을 알렸다. 그해 선거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압승했다.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를 통해 16개 광역단체장 중 7곳에서 승리해 여당인 한나라당(6곳)을 앞섰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92곳(민주당) 대 82곳(한나라당)으로 이겼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여야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12월 대선에서 박근혜(51.6%) 대 문재인(48%)으로 보수진영이 가까스로 정권을 지킬 수 있었다. 2007년 말부터 2012년 말까지의 5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진보진영은 ‘폐족’에서 ‘부활’로 차곡차곡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놀라운 생명력과 복원력을 보였다. 그 종착점은 바로 지난해 있었던 5·9대선에서의 승리다.

9년여 만에 정권을 되찾은 진보진영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국정 운영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다시는 정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난다. 서슬퍼런 ‘적폐청산’의 칼바람 앞에 보수진영은 숨을 죽인다.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진보진영의 대북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집권 1년 만에 ‘개헌정국’을 주도하면서 야당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다.

지금 보수진영은 멸문(滅門)의 위기다. 전임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구속돼 있다. 전전임 대통령은 뇌물과 횡령으로 곧 구속될 처지다. 보수는 그야말로 유구무언, 창피하고 자존심만 상할 뿐이다. 보수를 대표하는 자유한국당도 전전긍긍, 현 정권에 대해 단발적으로 반대만 할 뿐 장기적인 새로운 비전과 실낱 같은 부활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가 불과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보수와 중도를 대변하는 세력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여전히 나뉘어 있다. 각자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속셈만 난무할 뿐 큰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된 국면이라면 선거 결과는 보나마나다.

혹자는 지방선거에서 지더라도 2년 후 국회의원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해 야권이 승리할 수 있다고 한다. 진보정권의 집요함과 치밀함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중진들이 툭툭 던지는 ‘보수궤멸’ ‘20년 장기 집권’의 그림이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너지면 일패도지(一敗塗地), 한 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수도 있다.

버려야 살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150년 전인 1868년 삿초동맹(薩長同盟)을 통해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불구대천의 앙숙이었다. 하지만 대의(大義) 앞에 소리(小利)를 버렸다. 지금 야권이 무기력하게 자신들만의 작은 이익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 또 무기력한 야당과 기세등등한 여당의 불균형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의 적(賊)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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