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출사표(出師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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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6 07:47  |  수정 2018-03-26 07:47  |  발행일 2018-03-26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출사표(出師表)

‘신(臣) 량이 아뢰옵니다. 선황제 폐하께서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하오나 대소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않고 충성스러운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황제 폐하의 특별한 황은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어 선황제의 유덕을 빛내시며, 충의지사들의 의기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비유를 들어 대의를 잃으셔서는 아니되며, 충성스레 간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

만일 간악한 짓을 범해 죄 지은 자와 충량한 자가 있거든 마땅히 각 부서에 맡겨 상벌을 의논하시어 폐하의 공평함과 명명백백한 다스림을 더욱 빛나게 하시고, 사사로움에 치우치셔서 안팎으로 법을 달리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 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로 남양의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했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황제께옵서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 번씩이나 몸을 낮추시어 몸소 초려를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에 감격해 마침내 선황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에 응하였사옵니다.

선황제 폐하께옵서는 신이 삼가고 신중한 것을 아시고 붕어하실 때 신에게 탁고의 대사를 맡기셨사옵니다. 신은 선황제의 유지를 받은 이래 조석으로 근심하며 혹시나 그 부탁하신 바를 이루지 못해 선황제의 밝으신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끝에 지난 건흥 3년(225년)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방은 평정되었고 인마와 병기와 갑옷 역시 넉넉하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나아가 중원을 평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늙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대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옛 황도로 돌아가는 것만이 바로 선황제 폐하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신의 직분이옵니다. … 원컨대 폐하께옵서는 신에게 흉악무도한 역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을 명하시고, 만일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선황제 폐하의 영전에 고하시옵소서. …’ (-제갈량 ‘출사표(出師表)’)

227년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조조의 위나라를 정벌하러 가며 유비의 아들인 촉제(蜀帝) 유선에게 올린 표문(表文)입니다. ‘차라리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조조의 서늘함과 ‘세상이 비록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겠다’는 유비의 인의(仁義)가 충돌하는 대서사에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란 다소 구태의연한 찬사가 붙은 이 제갈량의 출사표는 삼국지의 백미(白眉)란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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