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철학이 담긴 대구교육감 선거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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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8   |  발행일 2018-03-28 제30면   |  수정 2018-03-28
대구교육감 선거 출마 선언
대학교수·장관출신 네 후보
진보·보수 프레임 거부하고
소신있는 정책 대결로 눈길
대구교육 르네상스 이끌길
20180328
박종문 교육팀장

6·13지방선거에서 빅매치를 기대했던 대구시장 선거는 김부겸 장관이 출마를 고사하면서 김이 빠졌다. 이대로 간다면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예전 선거와 다를 바 없이 사실상 한국당내 공천경쟁으로 승부가 가려지게 됐고,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도 1당 지배체제를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을 지렛대 삼아 여권의 기초단체장 배출과 지방의회 의석수 확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확고한 한국당 지배구조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반면 대구시교육감 선거는 점입가경이다. 향후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강은희 전 장관과 이태열 전 대구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이 출마선언을 하고 대구지역 진보 시민단체들이 혁신네트워크를 결성해 후보감 물색에 나설 때는 단순히 보수와 혁신세력 간 대결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보수색 짙은 대구에서 다른 지역의 혁신 교육감 탄생을 지켜봐야만 했던 시민단체들은 이번 선거만큼은 통합 혁신후보를 배출하고 당선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처음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김사열 경북대 교수는 혁신 네트워크 경선참여를 거절하고 독자후보로 나섰다. 유력하게 거론되던 홍덕률 대구대 총장도 혁신 네트워크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온 김태일 영남대 교수와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이 참여해 체면치레는 할 상황이었는데 정 전 교육위원이 중도사퇴하면서 김태일 교수가 혁신교육감 후보로 선출됐다.

그런데 지난 21일 김태일 교수가 돌연 기자회견을 갖고 김사열 교수에게 단일화를 공식제안했다. 혁신 네트워크와 사전 협의도 없이 단일화를 던진 것이다. 이에 김사열 교수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22일)에는 장고를 거듭하던 홍덕률 총장이 마침내 교육감 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이로써 대구에서 혁신적인 지식인 운동을 함께해온 대학교수 3명이 나란히 출마선언을 하게 됐다. 혁신 네트워크가 애초에 그린 큰 그림인데 혁신 네트워크 울타리 밖에서 환상적인 경선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김태일 교수가 발빠르게 다음 날(23일) 이번엔 3자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그러면 왜 김사열 교수와 홍덕률 총장은 혁신 네트워크 경선 참여를 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 대목이 이번 대구시교육감 선거의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독자후보를 선언한 김사열 교수의 입장은 간단하다. 교육감 선거는 원래 정당선거가 아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간 대결도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정책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홍 총장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감 선거를 선거공학적 프레임으로 엮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홍 총장은 자신을 진보 교육감 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 교육감 후보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구교육을 이끄는 길에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혁신 후보인 김태일 교수조차도 교육은 진보와 보수를 다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와 보수를 다 담아내는 큰 그릇, 공화주의 가치에 기초한 교육혁신을 하겠다고 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강은희 전 장관도 보수색채를 과감히 벗고 대구교육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후보들의 지난 삶의 행적을 볼 때 이같은 발언이 단순히 당선을 위한 정치적인 수사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특정 이익집단이나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있게 선거에 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공학적이고, 유권자의 선택을 강요하는 진보와 보수 프레임을 스스로 과감히 벗어던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도 보지 못한 이상적인 교육감 선거 양상이라고 생각된다. 남은 선거기간 소신있는 정책대결로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가치를 오롯이 담아 대구교육의 르네상스를 이끌기를 기대한다.

박종문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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