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부동산에 정의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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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9   |  발행일 2018-03-29 제31면   |  수정 2018-03-29
[영남타워] 부동산에 정의를

압축성장의 그늘은 불안이다. 영화 화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마천루가 지어지는 고도성장 속에 다수는 엄청난 부의 축적을 이루고 그 기회는 늘 눈에 보이며 회자되는데, 나만 뒤처져 있다는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은 욕망으로 변주되어 한국사회의 현대사는 부와 물질적 성장과 관련된 욕망이 발현되고 충돌하는 장이 됐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한정된 재화 또는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에 대한 투자였다. 위험도가 높은 가상화폐나 복권 또는 주식 같은 방법을 제외하면 결국은 부동산과 교육이다.

부동산은 가장 한정적인 재화로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급변 속에서도 그 가치가 유지된다. 교육은 최소 투자 또는 큰 투자 없이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에 모두들 달려든다. 어떤 제도,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개선이 쉽지 않다. 그러니 속수무책, 국민의 고통만 커져 갈 뿐이다.

정부가 최근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해결될 순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부동산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는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 원칙을 전제로 하면서 이용과 수익, 처분을 공익 차원에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은 토지가 개인의 사유재산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는 만큼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부정하는 개념도 당연히 아니다. 그저 다른 재산권에 비해 국가가 좀 더 엄격한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근거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를 놓고 “시장경제 체제를 흔들고 사유재산 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회주의적 개헌안”이라거나 ‘겉은 오렌지색이면서 속은 빨간 자몽헌법의 본편’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하는 일부의 비토가 타당하지 않은 이유다.

사실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는 박정희 정권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토지를 절대적인 사유물로 인정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실정에 비춰볼 때 토지공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은 당시 건설부 장관이었다. 1970년대 중반 중동건설 특수로 들어온 유동자금으로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었고 부동산 투기광풍으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졌다.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해 토지공개념위원회가 서둘러 구성됐고 이후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골자로 하는 토지공개념 관련 입법이 구체화된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자조적인 세태 풍자가 실감나는 부동산 투기와 이에 따른 서민들의 주거 불안정을 놓고 보면 사실상 시장실패(market failure)다. 공공자원인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시장실패에 따른 국가 개입 논리에 따라 토지 보유로 인해 발생한 ‘이득’에 대해 ‘공평한 과세’를 하자는 것이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상위 1%의 부동산 부자가 전체 토지의 46%를 보유하고 국민의 절반(44%)은 무주택자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상위 1%의 부동산 부자들이 무주택자들을 대상으로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은 연간 300조원에 달한다. 일반 서민이 중위가격의 주택을 마련하려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2년을 모아야 한다. 집을 가졌지만 과도한 주택담보대출로 하우스푸어로 몰린 사람도 많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부동산 문제로 심각한 병이 들었다. 부동산 문제가 국가의 경제구조,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을 왜곡시키는 지금, 부동산 자산 격차가 초래하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더 이상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참에 부동산 투기와 심각한 부의 불균형을 개선해 토지정의와 주거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토지공개념의 입법화가 국회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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