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천 금호읍 최무선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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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30   |  발행일 2018-03-30 제36면   |  수정 2018-03-30
별의 도시에서 과학의 ★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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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과학관. 무관이자 과학자였던 최무선을 기념해 그의 고향에 세운 과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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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과학관 야외전시장. 퇴역한 장갑차, 함포, 헬기, 수륙장갑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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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홀. 모형탄약, 신기전 등의 복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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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시청각실에서는 최무선 장군의 화약무기 개발과 진포대첩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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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장. 최무선의 생애와 그가 개발한 무기 등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듯한 읍내들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 만들어놓은 동네라는 뜻이다. 활발한 고요가 서로 바싹 붙어 앉아 있고, 태연한 번성의 얼굴에서 윤기 있는 안정감이 흐르는 동네 말이다. 금호읍에 대한 기대가 그랬다. 그러나 박공지붕의 금호역과 풍부한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던 거리의 기억은 너무 오래되고 또 조금은 왜곡된 것이었던 듯하다.

조선은 이순신, 고려는 최무선

원기리 중심 원방마을 남쪽 마단마을
무관이자 과학자인 최무선 탄생한 곳
태어난 마을에 장군의 이름 딴 과학관

中 화약 아는 사람 찾아 극진히 대접
다양한 포·화약 이용한 화살 등 개발
진포대첩, 화약 사용한 세계 첫 승리

바다항해하는 함선처럼 보이는 기념관
화포·불꽃놀이 창의과학 다양한 체험


◆ 금호읍 원기리, 오계리, 마단

금호역은 2007년 6월1일 문을 닫았다. 지금은 대구선 복선 전철화 공사를 위한 대형 트럭이 들고나는 가운데 그 오뚝한 얼굴을 여전히 치켜세우고 서 있다. 금호시장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뻗은 금호로를 바라본다. 대도시와 인접한 소읍들이 대개 그렇듯 변화는 순식간이고 수순인 과도기적 공황은 고착의 우려를 일으킨다.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금호로를 바라본다. 읍내답게 번성한 가로수들이 예사로운데, 길의 한쪽으로만 늘어선 모습은 기이하다.

금호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한다. 넓게 번쩍이는 도로를 잠시 달리면 곧 오래된 2차로 도로다. 길가로 소규모의 농원과 포도밭, 커다란 주유소들, 공장들이 갈마든다. 3㎞ 정도를 무심히 달리면 그제야 평온함을 주는 전원의 모습이 펼쳐지고 오래된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가에 선 ‘최무선과학관’ 표지석을 쫓아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앞 작은 버스정류장에 ‘원기리’라 적혀 있다. 이곳은 원기리의 중심 마을인 원방(元方) 마을이다. 정갈한 집들이 간잔지런하게 들어서 있고 마을 끝자락에는 ‘뱅꼬레 와이너리’ 건물이 큼직하게 자리한다. 과학관은 집들과 가깝게 마주보고 있다. 사방은 들이고 포도밭은 흔하다.

원기리 동쪽은 오계리, 원방마을 남쪽은 마단(麻丹) 마을이다. 마단은 조선 중종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경재(警齋) 곽순(郭洵)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을사 사화로 옥사한 그는 “죽으면 고향의 대마(大麻)가 붉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1545년 9월15일 마단의 삼밭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3일간 계속 색이 변했다고 한다. 이후 경재 선생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마단이라 불렀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1326년, 고려시대 무관(武官)이자 과학자인 최무선(崔茂宣)이 마단에서 태어났다. 그때의 마을 이름은 ‘창수리’였다고 전해진다. 원기리 원방과 오계리 마단 일대는 고려시대 창수리라 해도 큰 억지는 아닐 듯싶다.

◆ 최무선과학관

그가 태어난 마을에, 그의 이름을 가진 과학관이 있다. 최무선과학관. 사업 초기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원방마을에 있던 창산초등학교가 폐교를 맞았고, 그 자리에 2012년 과학관이 세워졌다. 과학관을 찾았던 날은 세상의 모든 바람이 과학관 앞마당에 집결한 날씨였다. 그 모든 소란 속에서 최무선과학관은 태풍의 바다를 항해하는 함선처럼 보였다. 야외 전시장에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사용되었던 장갑차, 함포, 팬텀비행기, 헬기, 수륙장갑차 등이 함선의 군장비처럼 서있다.

봉두난발로 건물에 들어선다. 든든한 고요를 기대했건만 1층 로비와 복도 전체에 테이블과 의자가 빼곡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다. 관람이 가능한 곳은 시청각실. 컴컴한 방에 들어서자 영상이 시작된다. 최무선 장군의 화약무기 개발과 세계 최초로 화약을 사용해 승리한 진포대첩 이야기다. 1380년 가을, 전함 100여 척의 고려 수군이 500여 척을 동원한 왜구의 침략에 맞서 싸워 승리한 전투다.

최무선 장군이 살았던 고려 말은 왜구의 노략질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최무선은 일찍부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구를 제어하는 데는 화약만한 것이 없는데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당시 화약 제조법은 중국의 국가 기밀이었다. 고려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약간의 화약을 얻어와 간단한 병기와 불꽃놀이에 쓰는 정도였다.

최무선은 중국 상인들 중에 화약을 아는 이를 찾아 뛰어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이원(李元)이라는 중국 사람을 만나 수십일 동안 극진히 대접한 끝에 화약 만드는 법을 알게 된다. 그때가 우왕 2년인 1376년, 이미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화약 및 화기 제작을 담당하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고 곧 대장군포, 이장군포, 삼장군포, 육화석포, 화포, 신포, 화통, 화전, 철령전, 피령전, 질려포, 철탄자, 천산오룡전, 유화, 주화, 촉천화 등 다양한 포와 화약을 이용한 화살 등이 개발되었다. “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진포대첩의 승리는 최무선에 의한 신무기 개발의 성과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최무선, 세종대왕, 장영실, 허준 등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우리나라를 빛낸 과학자 28인이 소개되어 있다. 2층 홀에 오르면 모형탄약, 신기전 등의 복제 유물을 볼 수 있고 상설전시실에는 최무선의 생애와 그가 개발한 무기 등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또한 스크린 터치를 이용한 퀴즈게임, 불꽃놀이체험과 시뮬레이션게임인 화포체험, 입체교구를 통한 창의과학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실이 있다. 사방이 무기고 전쟁 이야기지만 심각하지 않게, 가볍게, 재미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갑자기 음식 냄새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폭설로 피해를 입은 농가들을 돕던 자원봉사자들이라 했다. 이날 과학관은 태풍으로부터의 피신처, 듬직한 ‘최무선함’이라 할 만했다. 여말선초의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 최무선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139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성계가 ‘깊이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무선의 화약제조법은 아들 최해산(崔海山)에게 전해졌고 그는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최무선이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누가 있나. 노략질하는 왜구가 없어서 인가.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4번 국도 영천 방향으로 간다. 경산 하양읍 지나면 영천 금호읍이다. 읍내에서 금창2교 혹은 금창교 건너 909번 지방도를 타고 남하하다 보면 오른쪽에 최무선과학관 표지석이 보인다. 과학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다. 1층 로비에는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화포를 토대로 조선시대로 이어져온 현자총통, 별황자총통, 지자총통 등 복제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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