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해피 어게인·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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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30   |  발행일 2018-03-30 제42면   |  수정 2018-03-30
하나 그리고 둘

해피 어게인
인생은 고통, 그래도 헤쳐가야 하는 것


20180330

고통의 징글맞은 속성 중 하나는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그저 지켜보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징글맞은 속성일 것이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지만 살면서 정면으로 부딪쳐오는 새로운 종류의 아픔들에 의연히 대처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그 신묘한 진통제를 찾는데 평생을 보내다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서야 편안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엄마(‘지니’)를 갑작스레 잃은 ‘빌’(J.K. 시몬스)과 ‘웨스’(조쉬 위긴스)는 상실의 고통에 빠져 있다. 특히 강한 유착관계에 있던 아내를 떠나보낸 빌은 깊은 우울감에 시달린다. 지니는 그의 인생을 바꿔주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웨스는 그런 아버지를 잘 이해하고 따르는 착한 아들이지만, 역시 그의 고통까지 나눠줄 수는 없다.


과거·현재의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만신창이 인물들의 내면연기도 주목 할 만


‘해피 어게인’(감독 커트 보엘커)의 인물들은 모두 과거와 현재의 상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고통의 방문에는 어른이든 아이든, 교사든 학생이든, 부자든 서민이든 예외가 없다. 빌 부자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학교에서 만난 프랑스어 교사, ‘카린’(줄리 델피)은 이혼의 아픔이 있고, 웨스의 프랑스어 짝꿍인 ‘레이시’(오데야 러시)는 부모님의 심한 불화 때문에 우울하다. 영화에는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찾는 다양한 양성적·음성적 방법들이 등장한다. 빌은 상담을 받고 약을 먹지만, 레이시는 자해하거나 스스로 망가지는 쪽이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빌도 레이시와 마찬가지로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피 어게인’은 유사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기시감에서 벗어난다. 상담사나 약뿐 아니라 아름답고 매력적인 카린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빌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빌이 전기치료를 받는 장면에서는 그가 오히려 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이 묘사된다. 커트 보엘커 감독은 이런 방식을 통해 가족을 잃은 고통에서 벗어나 이전처럼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며, 마음의 치료에 정도(正道)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극복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의지라는 점만이 빌의 경우를 통해 강조된다.

단, 여기에도 필요조건은 있다. 환자가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북돋워줄 사람, 아무리 아파도 포기하지 말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옆에서 외쳐줄 특별한 ‘관계’가 그것이다. 웨스는 빌과 레이시의 방황을 보며 어머니를 잃은 고통과는 또 다른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그는 그것을 그들 앞에 정직하게 쏟아냄으로써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있던 감정을 해소시킴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새로운 삶의 자극이 되어준다. 만신창이가 된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있게 표현해준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띈다. J.K 시몬스, 줄리 델피 등 중견배우들의 완숙함과 조시 위긴스·오데야 러시 같은 젊은 배우들의 풋풋함이 잘 조화를 이룬다. 일반적인 장르영화보다 담담하게 연결된 서사도 현실감을 높인다. 인물들이 다시 행복한 날을 맞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 순간에도 묵은 통증을 이기고 한 발짝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든 관객들의 마음일 것이다. 난파된 배의 생존자들이 함께 뗏목을 만들어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처럼 네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인생은 짧은 것, 그래서 더 소중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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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 도미히코’의 동명 소설을 애니메이션화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이하 ‘밤은 짧아’)는 그 제목만큼 독특하고 신선한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기상천외한 설정이 소개됨과 동시에 관련된 여러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쏙 빼놓지만 일단 그 스타일과 속도감에 익숙해지면 인생·청춘·사랑에 관한 작품의 철학에 감탄하게 된다.

‘밤은 짧아’는 ‘검은 머리 아가씨’(이하 ‘아가씨’)를 좋아하는 ‘선배’의 순애보를 근간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아가씨에게 반한 선배는 지난 1년 동안 ‘최대한 그녀의 눈 앞에서 알짱거리기’, 일명 ‘최.눈.알’ 작전을 써왔지만 이제 다음 단계에 돌입하기로 한다. 아가씨가 어릴 적 좋아했던 ‘라타타탐’이라는 책이 헌책시장을 전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그 책을 손에 넣어 우연인 척 그녀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기상천외한 설정과 정신 쏙 빼놓는 속도감
실소터지는 상황극뒤 삶에 대한 순수·열정



한편, 혼자서 매혹적인 어른들의 세계를 마음껏 탐방해보기로 결심한 아가씨는 폰토초에서 이백과 맞술 대결을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헌책시장에서는 헌책시장의 신을 도와주고, 대학축제에서는 게릴라 연극공연의 배우가 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다. 선배 또한 그녀의 뒤를 쫓으며 천신만고 끝에 ‘라타타탐’을 구하고 다른 남자들을 견제하기도 하는 등 긴 밤을 보낸다.

하룻밤이라는 설정하에 사계절을 배경으로 하는 네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데다 종종 인물의 정신세계와 현실, 판타지가 뒤섞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혹자는 이 산만한 애니메이션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과 실소가 터지는 상황극 뒤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삶과 사랑에 대한 순수·열정·긍정성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영화는 하룻밤에 사계절이 담길 만큼 인생은 짧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기조에서 출발한다. 첫 에피소드에서 노인들의 시계 초침이 젊은이들의 그것과 달리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든가, 노인 이백과 아가씨의 서로 다른 인생관을 대비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밤은 짧아’는 평범한 청춘 예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짧은 밤을 부지런히 걸어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선배가 아가씨에게 다가서기 위해 수많은 우연을 가장했던 것처럼 우리가 스치듯 만나는 이들도 어쩌면 운명의 철저한 계획 속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 그 신비로운 조화(造化)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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