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내몰지 않는 대구 북성로 도시재생] <하> 건축물·사람 투트랙 재생 꿈꾼다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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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3   |  발행일 2018-04-03 제6면   |  수정 2018-04-03
“근대 건축물 공적자산화…장인 맥 잇는 기술생태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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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성로의 도시재생을 지켜봐온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오른쪽)와 전충훈 북성로허브 사무국장은 “북성로 2.0의 목표는 주민들이 근대건축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보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성로가 가지고 있는 시그니처와 DNA를 유지해 나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늦추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하다 보면 주변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올라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낡은 도시를 재생하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지난해 7월 본격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리면서 원주민의 자생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안으로는 융·복합사업이 제격이다. 여기에는 건축뿐만 아니라 주민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각종 문화·복지 시설 확충, 사회적기업 육성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도시재생사업은 마을의 활성화와 돌봄, 주거 등 쇠퇴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지역이 전통과 가치를 파괴하지 않고 주민들이 그대로 머무를 수 있는 도시재생을 목표로 세운 ‘북성로 2.0’을 살펴봤다.

◆북성로 건축자산 보전

북성로(대구시 중구) 도시재생을 일궈내기 위한 플랫폼을 만든 이들이 있다. 대구에서 도심 재생 작업을 벌여온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와 북성로에서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는 전충훈 북성로허브 사무국장이다.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둘은 북성로의 도시재생 초창기부터 북성로에 뿌리를 내려 활동하고 있다. 각각 시간과 공간, 사람과 프로그램이란 주제로 북성로만의 도시재생 방향을 잡아왔다.


공공재산-민간재산 묶어 관리
막무가내 ‘부동산 개발’ 방지
행정적 매입, 법제 정비 등
체계적인 지원체제 뒤따라야



권 이사는 최근 ‘북성로 2.0’이란 이름으로 대구근대골목의 비전을 수립했다. 이 비전은 ‘건축물 재생’과 ‘사람 재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의 둘째 버전이다. ‘건축물 재생’의 성공 열쇠는 근대건축물 공적자산화다. 1세기 세월이 깃든 건축자산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외국의 공동체토지신탁처럼 공공재산과 민간재산을 묶어서 자산화하자는 구상이다. 국가와 개인의 것으로 존재하는 건축자산을 공동체자산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아보는 것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도심이 다시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거민이 내몰리고 역사가 담긴 근대건축물도 부동산 개발 논리에 묻혀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공정한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한다는 측면에선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된 토지공개념과도 맞물린다.

권 이사는 근대건축물 공적자산화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설계 전국공모전이나 시민창업 리노베이션 사업, 리노베이션 로컬포럼 및 국제학술대회, 근대건축관 조성 및 운영, 북성로시민대학 조성 및 운영 등이다. 근대건축물 하나로 일자리사업과 학술대회 등도 진행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근대건축자산 공적자산화를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꽤 많다. 행정적인 매입과 시민자산화, 로컬트러스트(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신탁운동), 토지신탁 및 토지공유 등을 시행해야 하며, 지역의 도심건축자산 기록화사업도 병행해야 한다. 법제도 정비해야 한다. 향촌동과 북성로1가 일부에만 해당하는 건축자산진흥법에 의거한 지구단위계획을 대구읍성지역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행정 및 지원조직 체계도 손봐야 한다. 부동산과 리노베이션, 주민협정, 지원금융자 상담 및 서비스 지원을 담당할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청년창업과 수익창출

‘사람 재생’은 기술생태계로 연결된다. 북성로 거주 기술 장인의 맥을 잇고 마을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기술생태계 재생사업이다. 권 이사의 기획안은 공업소 청년마에스트로 지원사업, 기술생태계 페스티벌, 기술예술융합소 운영 등이다. 그는 “6·25전쟁 이후 북성로에 고유하게 형성된 공업기술 장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공업장인들의 기술을 기록하고 전승할 필요가 있다”면서 “청년제작자가 기술장인의 노하우를 승계하고 은퇴자의 작업장을 인수하는 방법을 통해 창업환경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과 장소, 기술 재생을 통해 마을이 보유한 고유자산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맡아온 전충훈 북성로허브 사무국장이 적격이다. 그는 ‘사람과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재생을 일궈왔기 때문이다. 전 사무국장은 최근 북성로만의 소프트웨어를 구상 중이다.


공업기술 장인 노하우 승계
은퇴자 작업장 인수 등
청년마에스트로 창업 지원
사회적기업가 육성도 필요



그는 “북성로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동성로는 밤이 되면 북적인다. 북성로의 경우 낮은 공구상의 일로 북적이지만 밤이 되면 한적하다”면서 “북성로의 밤을 유니크하게 꾸민다면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단지 ‘먹고 마시는 거리’나 ‘기성품을 쇼핑하는 곳’이 아닌 생산 자체가 엔터테인먼트화 되는 곳이면 좋겠다. 북성로는 수제화나 공구상 등 뭔가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피가 흐르는 곳이니 잘 어울리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전 국장의 도움으로 북성로에 터를 잡은 사회적기업에서 기획한 ‘북성로 어쿠스틱 살롱데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데다 일본과의 교류 행사도 추진되고 있어 소프트웨어의 기반은 충분히 닦아놓은 상태다.

기술생태계 재생사업이 구체화된 사례는 이미 있다. 공구골목이라는 북성로의 정체성을 프랑스의 전통과자인 마들렌으로 나타낸 최현석씨(34)의 경우다. 목공예 예술가인 최씨는 북성로의 주물공장과 함께 북성로공구빵을 선보여 2016년 ‘메이드 인 북성로’ 공모에 선정됐다. 이후 그는 북성로에 매장을 내어 운영 중이다.

전 사무국장은 “기술장인과 협업해 빵틀을 제작한 뒤 실제로 가게도 냈다. 북성로의 역사를 버리지 않고 이어나가는 업그레이드를 해낸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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