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블록체인’이 바꾸는 정치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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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3   |  발행일 2018-04-03 제30면   |  수정 2018-04-03
제2 인터넷 혁명 ‘블록체인’
美에선 이미 전자투표 활용
이같은 시스템 정착된다면
대의정치는 종말을 고하고
직접민주주의의 꽃이 필것
[화요진단] ‘블록체인’이 바꾸는 정치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좋은 정치는 제대로 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름 좋은 정치인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 미래예측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까지 몇 년간 본지 ‘사람과 뉴스’면에 ‘이영란의 메가트렌드 읽기’라는 코너를 연재한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짬을 내어 서울 중구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국제포럼에 들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를 주제로 한 포럼이었는데 청중들의 참여 열기가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이 가능하지 않은 곳까지 임시좌석으로 채워졌는데, 그래도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행사장을 떠나는 모습이 목격됐다. 또 아침 일찍 시작한 포럼이 저녁까지 이어졌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젊은 층이었고 간혹 50대도 눈에 띄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의 무관심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장’이었다. 이는 필자에게는 우리 정치가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었나를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의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결국엔 현재의 정당정치를 종식시키고 대의민주주의제를 끝내게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거기에는 블록체인이 단순한 ‘분산원장기술’(수많은 사적 거래 정보를 개별적 데이터 블록으로 만들고 이를 체인처럼 차례차례 연결하는 기술)을 넘어 ‘제2 인터넷혁명’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인터넷이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는데 블록체인은 이보다 세상을 더 크게 바꿀 ‘혁신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적용되는데 20년 정도 걸렸다. 인터넷은 망을 깔아야 하기에 일종의 하드웨어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소프트웨어이기에 곧바로 밀려온다”며 “이르면 3년, 늦어도 10년 안에 경제 생태계가 새롭게 바뀌고 정부·공공·정치·경제·교육·금융·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정치의 꽃인 선거에 있어서 혁명적 변화는 벌써 시작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유권자 등록 및 신원 확인, 그리고 합법적인 투표만 집계되도록 투표가 변경되거나 제거되지 않고 전자투표를 합산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자유당이 대선 후보 선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를 도입한 것을 필두로 유타주의 공화당, 스페인의 포데모스, 우크라이나 정부 등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투표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이 같은 선거시스템이 정착되기 시작하면 대의정치는 종말을 고하고 직접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대의정치의 끝은 ‘정당’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공산이 크다.

이렇게 보면 이른바 세상의 모든 ‘중간자’를 없앨 것이라는 블록체인의 기술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해 말 가상화폐가 ‘폭등-폭락’하면서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블록체인의 본질이 드러나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기술로 인정받게 된 측면이 있다. 그 와중에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육성을 외쳐온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지 뒷북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가 유권자들에게 외면받는 것은 당연하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는 블록체인 등 세상의 변화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미래적 시각’을 갖춘 리더를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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