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위스 체르마트의 마테호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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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3   |  발행일 2018-04-13 제37면   |  수정 2018-06-15
神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알프스의 여왕’ 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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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네가 전망대의 십자가. 십자가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마테호른, 왼쪽이 몬테로사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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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길에서 내려다본 체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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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마트 역의 전기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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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마트 중심가 반호프 거리.

스위스에 따라붙는 단어는 언제나 알프스다. 두 단어를 분리해 놓으면 두 곳 모두 허전하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취리히에 도착할 때까지도 도무지 스위스 알프스의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몰랐다. 아니, 끌리는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불과 열흘 전에 이탈리아 북부와 오스트리아를 연결하는 환상적인 알프스 산악도로 ‘돌로미티 패스’를 경험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알프스는 제쳐두고 천천히 스위스의 여러 도시들을 넘나들었다. 로잔, 베른, 루체른 등을 거쳐 로만 호수를 따라 시용 성, 몽트뢰, 브베, 라보 지구의 포도밭까지 다니고 보니, 다시 알프스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운전을 좋아하는 나는 스위스 알프스 3대 패스로 불리는 푸르카, 그림젤, 수스텐 패스의 아슬아슬한 산악도로를 마음껏 누볐다. 자주 만나야 더 궁금해진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자동차의 속도가 각인한 알프스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발걸음의 속도로 그 속살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도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다는 융프라우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릴 때부터 영화관에서 보았던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의 뾰족한 설산 마테호른이 떠올랐다.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 뾰족한 설산
스위스·伊 국경 걸쳐…세계 3대 미봉
해발1620m 위치 인구 6천명 체르마트
화석연료 자동차 못 들어가는 청정마을

중심가 반호프거리 올망졸망한 가게들
탐험가들의 여정 전시 마테호른 박물관
1865년 英등반대원 7명 첫 정복의 환희
끊어진 로프…사고의 슬픔도 함께 간직

케이블카·곤돌라 이용 전망대 감상가능
수네가 5대 호수 도는 하산 트레킹 즐겨


마테호른은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 마차푸차레와 함께 세계 3대 미봉으로 불리기도 하고, 프랑스의 몽블랑, 스위스의 융프라우와 함께 알프스 3대 미봉으로 꼽히기도 한다. 마테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걸쳐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프랑스 국경도 있어서 사실상 세 나라가 공유하는 산봉이다. 그래서 이름도 독일어 마테호른 외에 이탈리아에서는 몬테체르비노, 프랑스에서는 몽세르뱅으로 불린다.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서는 체르마트를 가야 한다. 체르마트는 스위스 발레 주에 속하며, 인구가 6천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과 함께 등산, 스키, 하이킹 등 알프스 레저 스포츠의 중심지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이루는 몬테로사 산 북쪽 비탈면의 해발 1천620m 지점에 위치한 고지이면서 마테호른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체르마트는 화석연료 자동차 진입을 불허하는 청정마을이다. 나 같은 자동차 여행자들은 인근 마을인 태쉬에 주차를 하고 기차를 타야 한다. 태쉬 역에 도착하니 역의 규모에 비해 매우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체르마트가 마테호른을 위한 마을이라면 태쉬는 체르마트를 위한 마을인 셈이다. 태쉬에서 체르마트까지는 20분 간격으로 셔틀 트레인이 운행되고, 시간도 1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체르마트 역 구내를 나오니 장난감 같은 전기 자동차가 여럿 대기하고 있었다. 주로 짐이 많은 관광객을 위한 호텔의 픽업 서비스에 이용되는 자동차였다. 이 마을의 교통수단은 이러한 전기 자동차와 마차다.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온 나로서는 이런 자동차를 이용할 이유도 없고, 또 그만큼 큰 마을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작은 마을이어서 아껴가며 걸어야 할 마을이었다. 매력적인 목조 가옥과 다양한 가게들 때문이라도 걸음이 느려졌다. 힌터도르프 거리를 따라 늘어선 발레 주 전통의 목조 가옥들은 자연을 지키는 청정마을의 집들다웠다. 이 가옥들은 나무와 돌로만 지어졌는데, 곡식 창고에 쥐가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기둥 받침 중간에 돌을 끼워 넣었다고 한다. 가옥을 지탱하는 통나무의 짙은 갈색과 창가에 놓인 제라늄 화분의 붉은색이 마을을 둘러싼 푸른 숲과 설산을 배경 삼아 절묘하게 어울렸다.

중심가인 반호프 거리에는 호텔과 레스토랑, 등산용품 가게 등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 레포츠를 즐기러 온 젊은이들이 많아서인지 거리 가득 활기가 넘쳐났다. 거리를 기웃거리는데 종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성 마우리티우스 교회였다. 1285년에 창건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 끝에 1587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마을과 어울리는 소담한 교회였다. 교회 옆에는 마테호른 박물관이 있다. 산악 농부들의 작은 마을이었던 체르마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조트 마을로 변모하는 과정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다. 옛 주민들이 살았던 집들과 실내 장식품, 그리고 과거 알프스 지역 탐험가들의 여정 등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도 유럽여행 중이던 1878년 체르마트를 방문했다. 1881년에 출간된 그의 여행기 ‘A tramp abroad’에는 ‘레펠베르크 등반(Climbing the Riffelberg)’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세기 당시 체르마트 주변 지역의 알프스 세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글에서 그는 마테호른을 ‘산악의 나폴레옹’이라고 표현했다. 마크 트웨인이 올랐던 그 길은 현재 ‘마크 트웨인의 길(Mark Twain Weg)’로 불리며,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의 하나가 되었다.

이 박물관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끊어진 로프였다. ‘알프스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마테호른은 해발 4천478m, 경사도 45도 이상의 암벽이 1천500m 이상이나 된다. 이런 자태는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신의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1865년 영국인 등산가 에드워드 휨퍼(Edward Whymper)가 이끄는 등반대원 7명이 스위스 능선을 타고 처음으로 마테호른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신의 경고인 듯 하산 과정에서 로프가 끊어져 등반대원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휨퍼는 이 마을 건물 벽에 흉상으로 새겨져 마테호른 최초 등반가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고, 사고로 죽은 이는 마을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혀있다. 끊어진 이 로프는 첫 정복의 환희와 사고의 슬픔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마테호른을 만나러 가는 나의 심정은 복잡했다. 꼭대기에 올라서는 그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가능하면 멀리서 천천히 보기로 했다. 마테호른을 가까이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편하게 갈 수 있는 몇 개의 전망대를 만들었다.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 전망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수네가와 로트호른 파라다이스 전망대 등이 그것이다.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 전망대는 마테호른을 가장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3천883m의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케이블카 역이자 전망대인 이곳은 케이블카와 곤돌라를 이용하여 약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스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날씨가 맑은 날에는 지중해 지역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마테호른의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고 알려진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다. 3천136m 높이의 이 전망대는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아래로 약 8㎞의 고르너 빙하가 펼쳐져 있고, 알프스의 여러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898년부터 운행되고 있는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는 세계 최초의 톱니궤도 열차이며, 고르너그라트 역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수네가와 로트호른 파라다이스 전망대를 택했다. 이곳은 푸니쿨라와 곤돌라를 이용해서 오를 수 있다. 수네가까지는 푸니쿨라로 연결되어 있고, 수네가에서 곤돌라를 타면 블라우헤르트를 거쳐 로트호른까지 오를 수 있다. 이곳은 마테호른을 가장 예쁘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전망대로 꼽히지만 내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수네가 5대 호수 트레킹 때문이었다. 슈텔리, 그린드예, 그륀, 무지에, 라이의 다섯 호수를 도는 3시간 남짓의 하산 트레킹 코스는 체력적으로 무리 없이 알프스와 마테호른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수네가에서 로트호른을 오르는 곤돌라가 운행을 중단했단다. 하는 수 없이 수네가의 라이 호수에서 체르마트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수네가로 가는 푸니쿨라 역은 체르마트 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마을 한쪽을 가로지르는 마터비스파 강을 건너니 푸니쿨라 역이 보였다. 지하 터널로 연결된 푸니쿨라는 수네가까지 3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네가 전망대에 내리니 넓게 펼쳐진 평원 너머로 잔잔한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산속의 호수 공원 같았다. 호수 주위에 널린 의자와 침상에 자리를 잡고 가족 단위로 느긋하게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에서 해발 2천288m의 고산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도 호수 주변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 일광욕을 즐겼다. 다른 사람들처럼 호수에 반영된 마테호른의 모습도 담았다.

나른해진 햇살을 털고 하산 트레킹을 시작했다. 평원을 가로지르고 듬성듬성 서 있는 목조 가옥 몇 채를 지나 숲으로 들어섰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좁다란 트레일은 좀체 앞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그림 같은 마테호른이 눈에 들어오고, 굽이를 돌면 또 기다렸다는 듯이 마테호른이 반겨 주었다. 더 좋은 것은 사람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온전히 즐겼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트레킹은 마테호른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갑자기 벼랑길이 나타났다. 난간에 박힌 쇠말뚝에 의지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그 벼랑 위로도 마테호른은 늘 그랬다는 듯 환하다. 벼랑길 아래로 성냥갑만 한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체르마트였다. 내려갈수록 집들은 점점 커져갔지만 좀처럼 사람은 보여주지 않았다. 마침내 집과 사람이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폭설을 견디기 위해 납작한 돌로 이은 돌 지붕도 보였다. 달구지가 지나갈 만한 제법 넓은 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나는 집보다 작아졌다.

마테호른을 만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다음에도 이 길 위에서 만날 것 같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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