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토지공개념’은 사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소유·처분은 공공이익 위해 적절히 제한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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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3   |  발행일 2018-04-13 제39면   |  수정 2019-03-20
20180413

태형아, 오늘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토지 공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이 해묵은 이야기가 다시 논란으로 떠오른 이유는 대통령이 얼마 전 제출한 헌법개헌안에 이 토지 공개념이 명시되었기 때문이지. 이에 대해 보수 정당과 학자들은 하나같이 이것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지. 한 정치가는 “소유권 불가침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재산제도와 자본시장주의 경제에 원칙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더구나. 과연 토지 공유제란 것이 그런가, 더 나아가 ‘소유’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어. 이 문제는 나도 많이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고,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어떠한 사고도 금기시되는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많이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구나. 그러나 이 부분은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사유 재산권의 정당성이 받아들여진 것은 불과 몇 세기 전부터야. 그리고 노동에 의한 사유 재산권을 정당화한 철학자이자 근대 헌법의 사상사적 지주인 존 로크조차도 사유재산권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위해서 양질의 충분한 잉여가 남아 있어야 하며 그것이 타인의 처지를 어렵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어.

물론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알려진 푸르동은 ‘소유, 그것은 도둑질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했지. 이러한 소유라는 문제가 가지는 가장 현실적이고 뜨거운 논쟁은 이데올로기적 상황으로 인해 현실 정치의 바깥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야.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 되면서 사적 소유는 자본이 개별 노동을 지배하는 것을 절대화했던 것이고.

오늘 여기서 소유 일반에 대한 철학적 논의 전반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다만 두 가지의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인, ‘사적(private) 소유’와 ‘개인적(individual) 소유’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너에게 숙제를 내려고 해. 이 어려운 숙제는 나도 고민해 볼 거야. 이 차이는 오늘의 토지 공개념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만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개인적 소유란 사적 소유의 배타적이고 제한적 범주가 아닐까 해. 그래서 이런 경우 국가적 소유는 사적 소유와 서로 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서로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어쨌든 토지 소유권에 대해 이야기를 좁혀보면, 이것은 ‘자유 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사회주의적인 사고가 아니야.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 정의론자인 존 롤즈뿐만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자인 로버트 노직까지도 토지 소유권의 절대성을 부정했다고 해. 토지 공개념도 토지의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소유권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이거든.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사적 소유권 그 자체는 인정하되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국가가 토지소유 또는 점유를 확대해 토지를 국·공유화하겠다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야. 토지재산권은 그 속성이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다른 재산권에 비해 훨씬 높은 공공의 복리에 대한 의무가 부여된다는 것이지.

토지공개념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야. 그를 한국에 많이 소개한 김윤상 교수에 따르면, 헨리 조지는 빈곤 문제에 관해서는 한때 카를 마르크스보다 더 많은 공감을 얻었던 인물이었고, 그의 명저 ‘진보와 빈곤’은 19세기 후반 당시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보급되었던 책이었다고 해. 그의 사상을 여기서 다 개진할 수 없으므로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들어보자.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은 토지사유제에 있다. 토지소유자가 생산에 기여하지도 않으면서 생산물의 일부를 지대로 차지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요소에 배분되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토지를 비롯한 천연자원은 국민 모두의 것으로, 즉 공유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굳이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지대를 환수하여 공공목적에 사용하는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도입하면 충분하다.”

지대조세제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할 염려가 있어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지대 이자 환수의 핵심은 ‘원금은 보장하자는 것, 즉 매입 당시 지가는 인정하자는 것, 다만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토지 가치가 상승한 부분은 세금으로 걷자는 것’.

태형아, 사실 오늘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에는 소유의 문제나 토지공개념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 억견에 관한 것도 있어. 지난 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너무 소문과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소비하고 있어. 모두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을 기만하기 위해 쏟아내는 정치인의 잡설 정도는 시민으로서 걸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서 오늘은 누구의 책이 아니라 내가 잘 공부하지 못해 후회되는, 근대 정치형성의 기본과 기초가 되었던 책들은 읽어보라는 말을 해 주고 싶구나. 루소, 로크, 홉스, 스피노자 등 이들의 원전은 꼭 읽어 보자.

시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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