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수성못·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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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42면   |  수정 2018-04-20
하나 그리고 둘

수성못
수성못 알바생에게 닥친 상상도 못했던 일


20180420

‘희정’(이세영)은 수성못에서 오리배 태워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편입 시험을 준비한다.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낮에는 일에, 밤에는 공부에 매달리는 그녀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이 세대 청년들의 표본이다. 그러나 또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희준’(남태부)만 해도 우울증 때문에 집에서 책 읽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고, 한 남자의 수성못 투신 사건으로 우연히 엮이게 된 ‘영목’(김현준)은 삶을 포기하려 한다. 첫 장면에서 희정은 오리배 손님들에게 구명 조끼를 준 다음 사무실로 돌아와 ‘predicament’(곤경/궁지)라는 단어를 외운다. 구명 조끼가 필요한 것은 사실, 아무리 물속에서 발을 열심히 저어도 좌초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일 것이다. ‘수성못’(감독 유지영)은 어떻게든 환경을 극복하고 스스로 삶을 선택해보려 하는 희정과 이 시대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대비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땅거미처럼 조금씩 해맑은 희정을 잠식해 들어간다. 영목은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사회봉사에 희정을 끌어들인다. 그의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대개 20~30대의 젊은이들이다.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을 희정은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도 인생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며 좌절한다. 이대로 괜찮을까? 개인이 ‘치열하게’ ‘목표를 갖고’ 사는 것으로 시대의 어둠을 극복할 수는 없다. 그런 판타지 속에 사느니 희준처럼 차라리 함께 기를 모아 삶을 움직이게 만들자는 길거리 포교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낫겠다는 자조가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한다.


미래준비 위한 치열함, 희망없는 청년세대 대비
신나는 기타소리와 섬뜩한 마지막 장면 인상적



영목 캐릭터는 다소 설익은 듯하고 블랙코미디 상황극 또한 완숙하게 연출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구 출신의 씩씩한 주인공 캐릭터가 상큼하고, 그녀를 옥죄오는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현실 감각이 돋보인다. 수성못이라는 공간의 밝은 분위기와 무거운 주제의식을 결합한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특히 대낮의 아름다운 호수와 신나는 기타 소리가 역설적으로 섬뜩한 상상력을 자아내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희정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라면 ‘곤지암’ 괴담보다 무서운 ‘수성못’ 괴담에 더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8분)


콜럼버스
멋진 건물과 교감하며 각자의 두려움 극복


20180420

우리가 늘 다니는 학교와 도서관, 병원과 상점 건물에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이 조금은 달라질까. 그 건물에 발을 디딜 때마다 건축가들의 철학과 인생이 떠올라 때로는 좀 더 편안하게, 때로는 숙연하게 그 공간에서의 시간을 누릴 수 있지는 않을까. ‘콜럼버스’(감독 코고나다)에는 건물과 건물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가족 문제로 원치 않은 발걸음을 해야 했던 한 남자는 그녀의 설명과 감상을 들으며 이 도시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견고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오가는 지적인 대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요동치는 내면을 대변하며 러닝타임을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서사가 생략 없이 천천히 진행된다는 점에서 ‘경주’(감독 장률)와도 닮은 데가 보이고, ‘한여름의 판타지아’(감독 장건재)나 ‘비포 선라이즈’(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시리즈처럼 공간을 매력적으로 소개한 영화들도 떠오르지만 결국 정말 유사한 작품을 찾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그만큼 개성있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두 남녀의 가족에 대한 고민, 건축물 통해 치유
건물·실내공간의 훌륭한 미장센·시각적 향연



미국 중동부 인디애나주의 ‘콜럼버스’에는 유명한 건축가들의 모더니즘 건축물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엄마가 염려되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종종 멋진 건물들을 감상하며 마음을 달랜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갑작스레 이곳에 온 ‘진’(존 조)은 아버지의 상태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변화되기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케이시가 진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건물과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들이 함께 바라보는 건물들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상황을 시각화하거나 심리를 반영하기도 하고, 영화의 기조를 드러내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기능한다. 가령, 케이시는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교회 건축물을 비대칭 속에 균형이 있다고 소개한다. 엄마를 떠나지 못하는 딸과 아버지를 떠나고 싶은 아들, 두 중심인물의 관계 또한 비대칭 속에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진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은 건축물에 치유의 기능을 부여하고자 했던 설계자 제임스 폴셱의 의도대로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두 남녀가 건물을 두고 교감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각자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격려한다는 점에서 ‘콜럼버스’도 치유라는 관점으로 접근 가능한 작품이다.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이자 건축물의 조형성을 스크린에 가장 잘 구현해낸 감독으로 평가받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을 볼 때와 같은 즐거움이 쏠쏠하다.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건물들을 잘 잡아낸 것은 물론이요, 인물들의 동선을 고려한 실내 공간의 분리와 사물의 배치까지 훌륭한 미장센과 촬영이 시각적 향연을 펼친다. 한국계 미국 감독 ‘코고나다’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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