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가상현실과 비눗방울 속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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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3 07:46  |  수정 2018-04-23 07:46  |  발행일 2018-04-23 제17면

가상현실(VR)이란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컴퓨터로 구성,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마치 실제 주변 상황 혹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우리말의 가상현실에서 가상(假想)은 ‘가짜’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영어의 ‘virtual’은 ‘사실상의’ 혹은 ‘본질적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virtual’의 반대는 ‘명목상’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현실보다 더 생생한 현실을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며, 이 융합의 결정판이 가상현실이다.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보는 VR는 현실보다 더 생생하기 때문에 앞으로 VR가 대중화되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기를 2030년대일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나의 욕망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욕망을 최적으로 실현시켜주는 가상현실을 제공해 줄 때, 그곳이 바로 현대문명이 꿈꾸는 천국이 될 것이다. 현대문명의 이상은 바로 욕망충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각자 자신의 가상현실 속에 들어가 온갖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가는 그곳을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에고(ego)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 자체를 이미 가상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때 가상현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피부 경계선을 중심으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여 사는 것 자체가 이미 가상현실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감각기관이 갖는 인식의 한계로 인간은 태생적으로 한정된 형태로 대상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불교의 인식론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 모두 각자 엄청나게 큰 공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 공 안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과 세계가 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가 만든 커다란 공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갑이라는 사람의 공 안에 있는 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의 공 안에 있는 병이라는 사람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갑의 세계 속에 있는 병은 갑의 병일 뿐이고, 을의 세계 속의 병은 을의 병일 뿐이라는 뜻이다.

칠레 출신의 생물학자 겸 철학자인 마투라나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마투라나 이전에 독일의 생물학자 폰 윅스킬도 모든 동물은 스스로 가상세계를 구성하여 산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즉 배추흰나비는 노란색에서 자외색까지 볼 수 있고, 호랑나비는 빨간색에서부터 자외색까지 인지를 하는데, 이처럼 서로 다른 인식능력으로 인해 이들은 서로 다른 가상세계를 만들어 산다는 것이다. 윅스킬은 이를 불교의 투명한 공 이론에 비유하여 ‘비눗방울 속의 세계’라고 불렀다.

투명한 공 혹은 비눗방울 속의 세계는 바로 에고가 만든 세계다. 우리가 각자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바로 에고의 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가 주체인 상태에서 욕망이나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모든 노력은 불가능한 것이다. 참자아(Self)에서 벗어나 추구하는 모든 것은 비눗방울 속에서 일어나는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든, 인류 평화를 성취하려는 것이든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좇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고를 제거하고 참자아를 회복하지 않는 한 인류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고를 벗어나 참자아를 회복하는 데 우선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은 감정과 느낌이다. 에고는 머리이고 감정과 느낌은 가슴이고, 그 가슴 다음이 존재다. 우리가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하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를 이어령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말로 표현하여,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하였다. 인간은 머리, 가슴, 그리고 존재라는 세 가지 지평을 가지고 있다. 머리는 생각하고, 가슴은 느끼고, 그리고 존재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성장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존재로 이동하는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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