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공무원 고시

  • 원도혁
  • |
  • 입력 2018-04-25   |  발행일 2018-04-25 제31면   |  수정 2018-04-25

서부 경남의 한 도시에 사는 필자의 큰누나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시집도 안가고 애를 먹이던 딸이 지난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모 지자체의 휴양림 관리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로 알바를 뛰면서 무려 6년간 고시 아닌 고시 공부를 했다는 조카의 고행기를 최근에 들었다. 조카가 36세인데도 “이제는 신랑감 고르고 또 고를 거다”며 호기를 부리는 누나가 왠지 밉지는 않다. 공무원이 뭐길래 다들 저리 난리일까 싶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대단하다. 7급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은 2015년 81.9대 1, 2016년 76.7대 1이었고, 선발 인원을 대거 늘린 지난해에도 66.2대 1이나 됐다. 지난해 6월 실시된 지방직 9급시험 경쟁률도 21.4대 1이었다. 이는 일본보다 3.3배나 높은 것이다. 일본은 공무원 보수가 대기업보다 조금 낮은 대신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행정고시·사법고시 시험에 버금가는 공시의 높은 경쟁률은 이유가 있었다. ‘박봉에 늘푼수 없다’던 그 공무원이 더 이상 아니었다.

한국의 공무원이 취준생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이 돼 버린 배경은 뭘까? 우선 대기업보다 처우가 낫다. 임금 인상률이 평균 7%대로 대기업(6.2%)보다 높고 근무가 안정적이다. 일반 사기업과 달리 휴가는 물론 육아휴직도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다. 게다가 퇴임 연령(56~59세)은 대기업(52세)보다 4~7년 더 길다. 공무원연금은 사기업의 두 배가 넘는다. 한마디로 정년이 보장되고, 근로 환경이 좋으며, 연금을 포함한 생애 소득이 사기업보다 훨씬 높다. 선호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무엇보다 급변한 작금의 사회 풍조가 일조했다. 예전엔 이름만 들어도 부러워하던 대기업이나 고관대작을 많이 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들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입신양명’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에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이다. 필자의 한 지인은 신문 기자 생활을 29년 한 뒤 은퇴를 앞두고 최근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한 지자체의 공무원이 됐다. 기자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택호를 바꾼 이 혁신적인 사례는 언론계 주변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공무원 고시를 통과한 실력도 그렇지만 그의 파격적인 변신이 놀라워서다.

원도혁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