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재경 경북학숙을 반대하는 이유

  • 이창호
  • |
  • 입력 2018-04-26   |  발행일 2018-04-26 제31면   |  수정 2018-04-26
[영남타워] 재경 경북학숙을 반대하는 이유

나는 반대다. 경북도 재경 경북학숙 건립 계획에. 취지(지역 인재 육성)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절 모르고 시주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서다. 대학 졸업 후 ‘보은의 마음’을 갖고 고향에 돌아올(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미래의 재경 경북학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열에 여덟아홉은 ‘서울시민’을 택하지 않겠나. 고향에 와 봤자 좋은 일자리도 없거니와 고퀄리티 문화도 향유할 수 없다는 예단일 것이다. 이미 운영 중인 다른 시·도 재경학숙생의 생각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학사 덕택에 서울에서 편하게 공부했지만 졸업 후 고향엔 내려가지 않겠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경북도 재경학숙 사업에 대구시가 참여했다가 최근 발을 뺐다. 그 땜에 욕을 먹었다. 대구시는 지역 대학생을 위한 공동기숙사를 짓는 게 더 급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욕먹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적어도 미래 ‘서울특별시민’을 위한 재경학숙보단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이른바 ‘지역 인재’에게 단지 애향심을 기대할 요량으로 재경학숙을 짓는다면 반대다.

서두에 꺼낸 재경학숙은 경북의 화두인 ‘지방(농촌)소멸 극복’과 분명 정서적 갭이 있기에 지적한 것이다. 소멸을 막으려면 사람이 새로 오거나 떠난 사람이 돌아와야 하는 게 이치다. 하지만 경북도와 시·군의 지방소멸 대책엔 ‘이거다 할’ 아이템이 눈에 띄지 않는다. 도시 청년부부가 경북에 오면 창업자금으로 기천만원을 준다는…, 둘째 셋째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더 준다는…. 이런 ‘꿀 혜택’을 과연 언제까지 안겨 줄 수 있을까. 그저 지자체가 통폐합 안 될 정도로만 인구를 늘리겠다는 의도인가. 지원(보조)금을 통한 인구 유인책은 한계가 있다. 지원금이 끊기면 다시 짐을 싸 도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생각을 바꿔보자. 지원금이 없어도 젊은 세대가 스스로 선택해 경북에 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길은 있다. 지역을 젊은이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면 된다. 특히 젊은 여성이 미래를 걸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바로 교육(학교)이다. 일본 구마모토현 다라기초 쓰키기초등학교는 학생이 없어 7년간 휴교했다. 그러던 2014년 이른바 ‘아이턴(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해 이사 온 가구에서 신입생 한 명이 생기자 다시 문을 열었다. 단 한 명을 위해서다. 우리는 어떤가. 학생이 조금만 줄어도 가차 없이 폐교다. 당장엔 신입생이 없어 학교 운영이 여의치 않을지라도 언제든지 다시 열 수 있도록 휴교로 남겨 놓으면 어떨까. 농촌 소멸을 막는 데 학교가 있고 없고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는 일자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도시 학교와 차별화를 기한다면 금상첨화고.

경북 일부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인구 유인책이 제시되고 있다. 지방소멸 위험지수 전국 1위인 의성은 요즘 딴 도시가 됐다. 지난 동계올림픽 ‘컬링 열풍’ 효과다. 이참에 ‘컬링 학교’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름대로 쌈박하다. 교육 프로그램을 알차게 꾸린다면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은 공무원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대학·기업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다. 지진으로 애를 먹은 포항에선 ‘포항을 지진극복 명소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강덕 포항시장 주장이다. 지진 박물관·트라우마 치유센터 등을 유치해 인구 증가·일자리 창출을 꾀하자는 것. 일본 고베 등 사례가 있다. 벤치마킹을 잘 해서 추진해볼 만하다.

향후 30년 내 경북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17곳이 소멸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를 막으려면 ‘유턴’이 타깃이 돼야 한다. 미래의 재경 경북학숙생과 같은 유능한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일이다. 눈앞 ‘인구수 늘리기’에 급급한 단기적 처방으론 어림없다. 비전을 제시하는 일자리,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 인프라를 차근히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창호 경북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