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선도산 서악마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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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  발행일 2018-04-27 제36면   |  수정 2018-04-27
왕들이 지키는 마을, 왕들을 지키는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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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서악마을. 검은 지붕 너머 서악동 고분군이 나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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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당. 황정의 재실 추보재(追報齋)를 1915년 서당으로 중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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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릉. 최초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29대 왕 김춘추의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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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동 고분군 앞에 있는 새골못. 일명 보희연못이다.

보희는 서악산(西岳山) 꼭대기에 올라 오줌을 누었다. 오줌은 흘러흘러 경주 시내를 가득 메웠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보희는 아우인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보희의 꿈을 산다. 훗날 문희는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고 보희는 김춘추의 첩이 되었다. 김유신의 누이 보희와 문희의 운명이 비단치마 하나로 바뀐 기막힌 이야기다.

길, 담벼락, 텃밭도 가지런히 깨끗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연둣빛 왕릉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아는 김춘추 능
무열왕릉·대형 고분 4기 둘러싸여
마을 끄트머리 다다르면 도봉서당
뒤편 소나무 숲속 맑은무덤도 여럿
언덕에 통일신라시대 보물 삼층석탑

서악산 꼭대기 오줌누는 꿈 꾼 보희
언니 꿈 사, 김춘추 아내된 문명왕후
고분 앞 새골못 ‘보희연못’이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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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동 삼층석탑. 모전석탑 계열의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보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악동 샛골

경주 대릉원 지나 서천교를 건너면 오른쪽은 김유신장군 묘로 가는 길, 왼쪽은 무열왕릉으로 가는 길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 서악산, 현재는 선도산(仙桃山)이라 한다. 김유신과 무열왕은 모두 보희가 오줌을 눈 서악산 자락에 잠들어 있다.

왼쪽으로 간다. 벚꽃이 떠난 길은 한산하다. 기찻길 아래 지나 무열왕릉 닿기 전 서악서원(西岳書院) 이정표를 본다. 서악서원은 김유신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조선 명종 때 창건되어 이후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을 추가 배향했는데 퇴계선생이 서악정사라 이름 짓고 직접 글씨를 써서 현판을 달았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다. 문은 잠겨 있고 토요일마다 서원에서 고택 음악회가 열린다는 안내문이 있다.

마을로 들어간다. 길도, 담벼락도, 집들도, 크고 작은 텃밭들도, 모두 가지런히 깨끗하다. 지붕은 검다. 기와지붕도 패널 지붕도 모두 검다. 시멘트벽은 희다. 돌담도 있고 흙돌담도 있다. 담장 너머로 라일락, 명자나무, 동백, 벚나무, 황매화가 마을길을 내다본다. 담벼락 아래에는 호박 넝쿨이 구르고 온갖 키 작은 화초가 자란다. 건초가 쌓인 창고 옆에 우사가 있다. 누렁소의 순한 눈빛과 마주친다. 그대들은 건초를 먹고 자라는구나.

골목길 사이로 연둣빛 잔디밭 넓은 왕릉이 보인다. 태종무열왕릉(太宗武烈王陵)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29대 왕,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것, 김춘추의 능이다. 성큼성큼 걸으면 백 걸음이 채 되기 전에 닿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의 무덤은 ‘경주 서악리에서 137보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이곳은 서악동(西岳洞) 샛골, 보통 서악마을이라 부른다.

◆고분에 둘러싸인 마을

마을안길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무열왕릉과 4기의 대형 고분이 위치한다. 오른쪽에는 주인을 알 수 있는 몇몇 무덤들이 산자락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무덤에 둘러싸여 무덤을 바라보며 걷는 마을길이다. 골목길에 ‘신라 문화원’이라 적힌 차들이 많다. 어느 집 마당에서, 어느 집 지붕에서, 마을 뒤 산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가꾸고, 담장을 낮추고, 잡목을 정리하고, 꽃을 심고 있다. 마을의 집 하나가 ‘신라문화원 문화재 돌봄 사업단’ 사옥이다. 마을 가꾸기는 오래되었는데 마을 전체가 본격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지난 가을부터라 한다.

느슨한 비탈길을 올라 마을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도봉서당(挑峯書堂)이 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황정(黃玎)의 재실이다. 처음에는 추보재(追報齋)라 했는데 점차 쇠락하여 1915년에 서당으로 중건했다. 서당 뒤편 소나무 숲 속에 맑은 무덤이 여럿이다. 솔잎이 쌓이고 쌓여 늪마냥 푹푹한 솔숲 속, 무덤들은 봉분 만큼의 둥근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 유일하게 문인석이 있는 작은 무덤은 황정의 묘다. 그 옆의 능은 제47대 헌안왕릉이다. 그 오른쪽의 능은 제46대 문성왕릉, 그 뒤의 능은 제25대 진지왕릉이다. 진지왕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무덤이 하나 더 있다. 제24대 진흥왕의 무덤이다. 너무 소박하다.

◆보물이 있는 언덕

도봉서당의 오른쪽 언덕에 삼층석탑이 서있다. 모전석탑(模塼石塔) 계열의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보물이다. 1층 몸돌의 남쪽 면에 네모난 감실이 얕은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문의 좌우에는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고 문의 중심부에는 쇠 장식을 달았던 흔적으로 추정되는 4개의 못자리가 있다. 전체적으로 묘하다. 둔중하고 과격한 느낌이 든다. 특히 크고 네모난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아 받침돌로 삼았는데 마치 언덕이 충분히 높지 않아 발돋움한 듯, 혹은 장정들이 엎드려 탑을 받든 듯하다.

탑의 감실이 향하는 곳, 마을의 검은 지붕들 너머 맞은편 구릉에 커다란 무덤 4기가 나란하다. 서악동 고분군이다. 왕릉으로 추정될 뿐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고분군 앞에 연못이 보인다. 일명 보희연못이라 부르는 새골못이다. 저 무덤들 아래에 무령왕릉이 위치한다. 제23대 법흥왕 이후 왕릉은 경주 시내의 평지에서 벗어나 분지의 좌우에 펼쳐진 산지의 말단부 구릉으로 이동하는데 서악동 고분군은 이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탑은 왕릉들을 지키듯 서있다.

석탑의 동편 산자락에도 무덤들이 많다. 누구였을까, 이 옛사람들은. 오늘의 사람들이 무덤 주위에 앉아 어린 화초를 심고 있다. “구절초지요.” 2011년부터 신라문화원에서 석탑 주변에 구절초를 심고 ‘구절초 달빛 음악회’를 열어왔다고 한다. 지난해 음악회의 사진을 보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더라. 그런데 왜 다시 심을까. 여러해살이풀에도 사연은 있을 게다. 석탑의 과격한 미에도 사연이 있을 것이고, 저 이름 모를 무덤의 주인들에게도 사연이 있을 게다. 석탑이 있는 이 언덕을 ‘문희공원’이라 부른단다.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샀던 그녀, 언니의 오줌 같기도 하고 한탄 같기도 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IC를 나와 금성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대릉원을 오른쪽에 두고 서라벌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서천교를 지나 다시 좌회전하면 된다. 서악서원 고택 음악회는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리며 무료다. 무열왕릉 입장료는 성인 1천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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