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당신의 부탁’ 임수정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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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  발행일 2018-04-27 제43면   |  수정 2018-04-27
“처음으로 엄마 역할…평생 함께하고픈 사람이 싱글대디일 수도”
독립영화 출연 염두, 풍부한 경험기회
천만 영화 못해봐…열망·간절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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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효진에게 아들이 생겼다. 죽은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난 종욱(윤찬영)이다. 효진은 시동생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고 사고무친 16세 종욱을 덜컥 아들로 받아들였다. 사랑했던 사람을 닮아서 낯설게 느껴지진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훌쩍 큰 사춘기 소년의 엄마가 되는 건 그리 녹록지 않다. 역시나 일상 곳곳에서 부딪치며 좀처럼 가까워질 기회를 찾지 못하는 두 사람이다.

‘당신의 부탁’의 효진은 감성 연기에 탁월한 임수정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다.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극복하려 하고, 큰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은 실제의 임수정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녀도 대책없는 종욱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터. 게다가 처음으로 맡게 될 엄마 역할이다. 그런데 웬걸 “제안이 왔을 때 너무 좋았다”며 “시나리오 첫 장부터 몰입이 됐고, 마치 섬세한 관찰자가 된 것 같았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임수정이 효진에게 끌렸던 건 전형적이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큰일일수록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고 보는 그녀의 행동이 멋졌다”는 부연 설명까지 뒤따른다.

아파하거나 슬퍼보일 때조차 당당함과 씩씩함을 잃지 않았던 만큼 이번에도 임수정은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돌파하는 데 거침이 없다. “다만 16세 아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효진의 당황스러움을 나 역시 느꼈고, 연기적으로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임수정은 쉽지 않은 관계와 감정들로 빼곡한 효진의 복잡다단한 속내를 예의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여린 듯하지만 강하게, 그리고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말이다.

독립영화 출연 염두, 풍부한 경험기회
천만 영화 못해봐…열망·간절함 있어

시나리오만 보고 감독님과 작업 기대
꼭 혈연만이 가족이라는 생각은 안 해
엄마와 다투는 신 평상시 내모습 공감

前남편의 16세 아이 받아들이는 캐릭터
몸짓·걸음걸이·감정표현 힘빼고 연기
내가 같이 가줄게 라는 마음으로 임해

라디오진행·다큐 제작·토크쇼도 욕심
같은세대 공감하는 에세이 출간 계획


20180427

▶‘더 테이블’(2017)에 이어 다시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 건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독립영화 출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크고 작은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다양한 한국영화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수준이 높았고 좋은 감독과 배우들도 많았다. 이처럼 능력있는 영화인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개성있는 영화들이 그간 한국영화를 지탱해 온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영화들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찾아간다면 한국영화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일조를 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행보를 계속할 생각이지만 아직 천만 영화를 못해봤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의 열망과 욕심, 간절함도 남아 있다.”(웃음)

▶‘당신의 부탁’은 유사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혈연과 무관한 가족 구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나에게도 그런 상황이 오지말라는 법은 없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남자를 만났는데 아이가 딸린 싱글 대디일 수도 있다. 효진처럼 그렇게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꼭 혈연만이 가족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범위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엄마의 개념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낸다. 그중 어떤 엄마에 가장 공감이 됐나.

“효진의 엄마(오미연)가 진짜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늘 잔소리를 하지만 딸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신과 달리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극 중 엄마와 다투는 신을 찍고 나서 오미연 선생님에게 그랬다. ‘내가 진짜 엄마한테도 이래요. 쉽게 짜증내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상처주는 말도 마구 쏟아내고. 그래서 늘 미안한 감정이 있지만 쉽게 털어 놓지 못한다’고 말이다. 선생님이 ‘그런 게 엄마와 딸이지 뭐’라고 말해주는데 진짜 저희 엄마 같았다.”

▶윤찬영과의 호흡은 어땠나. 그새 많이 컸던데.

“작년 촬영할 때와 다르게 많이 컸다. 찬영이는 실제로도 굳이 빨리 친해지지 않고 영화에서처럼 천천히 친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가만히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생각하는데, 찬영이는 정말 끈기 있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배우였다.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하는 부분과 있는 만큼의 연기를 보여줄 줄 알아서 통해 배우로서의 좋은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은 감독은 사려 깊은 시선과 특유의 스타일로 여성의 정서와 감정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포착했다.

“감독님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시나리오만 보고도 감독님의 성향이 느껴졌다. 말한 것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인 대화들이 놀라웠는데, 감정과잉 없는 인물들의 관계와 전반적인 이야기 정서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각본을 쓰고, 이런 영화를 연출하고자 하는 감독이라면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대화가 잘 통하고 정서가 잘 맞았다.”

▶배우가 극 중 캐릭터를 다 경험해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공감하거나 납득이 돼야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그 점에서 효진의 행동이 이해가 됐나.

“시나리오를 볼 때는 항상 내가 1차 관객이라는 생각으로 읽는다. 이야기나 캐릭터가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고 납득이 돼야 하지만 최근에는 남이 뭐라 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의 캐릭터에 마음이 더 끌린다. 효진이 그 경우인데, 솔직히 이해는 안됐다. 일단 남자 나이 16세면 다른 측면에선 안 좋은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종욱은 친아들도 아니고 어릴 때 잠시 본 관계이기 때문에 낯선 아이나 다름 없다. 만약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여자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효진이가 종욱을 데리고 오는 상황을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효진은 남편을 잃고 2년 동안 많은 상실감과 슬픔,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일종의 우울증인데 그 증상 중의 하나가 효진처럼 앞뒤 일을 생각하지 않고 대책없이 결정하는 행동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효진이 궁금했다. 그리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네가 가는 길은 혼자서는 외로우니까 내가 같이 가줄게’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힘을 뺀 채 감정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몸에 힘을 빼고 연기를 한 적이 없었다. 효진의 몸짓, 걸음걸이는 물론 말을 할 때나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도 힘이 거의 안 들어갔다. 그게 효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보니 연기적으로 유연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나야 그렇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 느꼈다.”

▶‘필름클럽’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애청자였던 이동은 감독이 팟캐스트를 듣고 캐스팅을 제의했다고 들었다.

“2016년 말부터 세 명이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에 비해 내 역할은 크지 않다. 소소한 영화평과 관심있는 이슈를 전달하는 피처링 개념이다. 하지만 다른 매체보다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게 팟캐스트의 장점이다보니 그 시간만큼은 정말 신나고 즐겁다. 그래선지 나도 모르게 솔직하고 거침없이 내 생각을 얘기할 때가 많다. 이동은 감독님이 그 점에 주목해 내가 효진이에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엄마라고 하면 임수정이란 배우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수 있는데, 반대로 그런 면에서 신선하게 다가올 것 같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사실 목소리가 정갈하고 차분해서 라디오를 진행해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예전 성시경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일주일 대타로 맡은 적이 있다. 이후 라디오 개편 때마다 꾸준히 제의가 들어온다. 그런데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알다시피 배우는 프리랜서와 같다. 작품이 있으면 몇 개월 반짝 일하고 없으면 쉰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다보니 직장인처럼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라디오는 워낙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서 꼭 해보고 싶긴 하다. 만약 하게 된다면 늦은 밤시간대가 적당할 것 같다. 내 목소리가 졸음을 몰고 온다는 얘기가 많아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청취자들을 위한 방송이 될 것 같다.”(웃음)

▶팟캐스트 진행도 그렇고 요즘 행보를 보면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다. 문제는 게으른 내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히 개나 고양이처럼 집에 콕 박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연기 외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면서 의지가 좀 더 분명하고 선명해지고 있다. 내가 기획·제작·출연까지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도 싶고, 내 이름을 내건 토크쇼도 욕심이 난다. 그중 올해 꼭 실천하자고 다짐한 건 책을 출간하는 거다. 내나이 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내 관심사를 담은 에세이 장르가 될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명필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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