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김정은의 재발견’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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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30   |  발행일 2018-04-30 제30면   |  수정 2018-04-30
집권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앞에 선 北젊은지도자
국민은 이미지에 집중해도 정책당국은 ‘김정은 방식’
파악하고 협상에 반영해야
2018043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1년 말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어둡게 봤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김정일이 20년 동안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지만 당시 20대 후반의 김정은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이는 일천한 경륜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기 세력을 미처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치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김정일 사망 후 맹수 같은 실력자들이 노동당과 군부에 득시글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정보기관조차 “김정은 체제가 1년을 못 갈 것” “노련한 고모부 장성택이 사실상 북한을 통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김정은이 올해로 7년째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군부 실세이던 리용호 총참모장과 노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이던 장성택은 실각했다.

집권 초반에 핵과 경제 개발의 병진(竝進)을 천명한 김정은은 핵실험과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지난 21일 사실상의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다. 우리를 상대론 목함지뢰 매설, 고사포 포격 같은 도발도 했다. 취약했던 통치기반을 다지고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에겐 ‘불장난을 서슴지 않는 전쟁광’ ‘고모부와 이복형(김정남)까지 살해하는 냉혈한’이란 이미지가 붙어다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미치광이’라고 하거나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다. 김정은도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되받아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과 ICBM 실험발사를 계속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정밀타격’ ‘참수작전’ ‘화염과 분노’ 같은 섬뜩한 전쟁용어들이 나돌았다.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건 김정은이었다. 신년사에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 화답하면서 남북 사이에 숨통이 트였다. 문재인정부의 대북특사단이 평양으로 간 자리에선 김정은의 입에서 ‘비핵화’란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준비도 착착 진행됐다. 국민 입장에서 여기까진 김정은의 실체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미국발(發), 북한발, 또 우리 정부발 메시지와 언론보도가 뒤섞이면서 옥석을 가리기 어려웠다. 이념성향별 판단 잣대도 달랐다. 그러다 4·27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고, 많은 일정이 육성까지 담아 그대로 생중계됐다. 김정은의 재발견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김정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국민이 재발견한 김정은은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영향을 미칠 국민여론으로 작용한다. 이에 비해 청와대나 통일부, 국정원 같은 대화 당사자들이 김정은을 어떻게 재발견했는지는 당장 정책에 반영되므로 현실적 중요성이 더 크다. 북한 핵 폐기를 이끌어 내고 전쟁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핵심 참고사안이 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 김정은이 툭툭 던진 유머나 호탕한 웃음소리에 집중하면 복선을 읽지 못한다. 그런 이미지보다는 ‘김정은의 방식’을 재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오전회담을 마치고 중간 빈 시간에 부인 리설주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시시콜콜 설명했다는 건 기존에 발견된 김정은 방식으론 선뜻 납득이 안 된다. 평화의집 대기실에서 서울시각과 평양시각을 가리키는 두 개의 시계를 보고 평양 표준시를 과거처럼 서울에 맞추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한 건 북측 의사결정 체계를 함축적으로 상징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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