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산 주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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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4   |  발행일 2018-05-04 제36면   |  수정 2018-05-04
해녀가 뭍으로 올린 돌미역, 햇볕·바람 좋은 곳에 누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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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항 북방파제. 선박의 항행 안전을 기원하는 탑 모양의 붉은 등대가 서있고 옹벽에는 주전 해녀들의 모습과 ‘주전마을’ 워드마크가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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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돌미역.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 채취하는 것으로 매년 3∼5월 갯가에서 미역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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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동 큰불마을 제당터. 당집은 사라지고 당목인 해송 3그루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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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항 북쪽의 몽돌해변. 동해안을 따라 1.5㎞에 달하며 ‘울산 12경’ 중 하나다.

붉은 땅, 주전(朱田). 그러나 붉은 땅은 보이지 않았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들과 왕성히 자라기 시작한 텃밭의 작물들 탓이다. 바다를 향해 읍하는 듯 허리 굽은 당산나무 곁에 차를 세웠다. 우아하게 내리려 했건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우악스럽게 밀어낸다. 대단한 바람이다. 낌새도 없이 달려들어 냅다 후려치는 바람 맛이 신선하다. 뭐지 이 바람은. 바람을 한입 베어 물고 꿀꺽 삼킨다. 아, 이건 미역내다. 바닷가 햇빛 좋은 자리에 미역들이 누워 있다. 그 검붉은 얼굴들이 붉은 땅이었다.

바닷가 3㎞ 이어진 마을, 항구만 3개
붉은땅 ‘朱’전동, 술 주‘酒’의미 변화
어촌 마을속 작은 마을 7곳, 총 10곳
그 많던 제당은 사라지고 해송만 남아

미역이 자라는 바위 ‘곽암’배정 뽑기
10∼12월 바다로 들어가 닦고 문질러
겨울내내 자란 돌미역 3∼5월 중 채취
북쪽 탑 모양의 붉은 등대·몽돌 해안


◆ 주전동

주전동은 바닷가를 따라 긴 동네다. 남북으로 얼추 3㎞가 넘고 하리항, 큰불항, 주전항 등 항구가 3개나 된다. 바다에 면해 있어도 8할 이상이 임야라 옛날에는 농사짓는 이가 많았다 한다. 조선 정조 때는 해안 마을을 주전해리(朱田海里), 언덕 위의 마을을 주전리라 했다. 고종 때 주전동으로 통합되었고 1911년에는 주전동(酒田洞)이 되었다. 붉은 주(朱)를 빼앗은 자리에 술 주(酒)라니 어이없다.

마을 속에 작은 마을이 7개 있다. 상마을, 중마을, 아랫마을, 봉수대 아래에 있는 보밑마을, 큰불마을, 언덕 위의 번덕마을, 새마을. 마을마다 제당이 있었고 모두 합하면 10곳이나 된다. 이런 세분화는 다른 어촌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다. 허리 굽은 당산나무는 마을의 북쪽 큰불마을에 있다. 당집은 사라지고 세 그루 해송만 남아 있는데 나무 아래 초승달 같은 의자를 놓아 이제는 쉼터다. 그 많던 제당들은 이제 없다. 2005년 경로당을 신축하면서 모든 위패를 모아 2층에 모셨고, 주전동 남쪽 어귀에 사라진 제당들을 기억하는 조형물과 표지석을 세웠다.

남쪽 해안은 하리항이 중심이다. 파란 지붕의 납작한 집들 사이사이 아주 많은 카페와 횟집이 들어서 있다.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바닷가 좁은 길의 절반은 평일에도 거의 주차장이라 교행이 흔하다. 마을의 중앙에는 큰불항이 있다. 횟집이 성하지만 보다 어촌다운 분위기다. 항구에 아낙들이 모여 앉아 미역을 손질하고 있다. 빨간 모자에 빨간 작업복을 입은 장정이 미역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와 그녀들 곁에 부려 놓는다. 곁에는 잘 손질된 미역들이 햇볕과 바람에 말라가고 있다.

◆ 주전 돌미역

주전 돌미역은 귀하고 유명하다. 깊은 바다 속에서 밀물과 썰물을 견디며 자라고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 수확하는 미역이다. 매년 추석이 다가올 즈음 주전 어촌계에서는 ‘곽암(藿巖)’ 배정을 위한 뽑기를 한다. ‘미역이 자라는 바위’를 나누는 일이다.

공정성을 위해 100여명이 동원된다고 한다. 소위 좋은 텃밭은 중요하니까. 곽암이 정해지면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텃밭을 가꾼다. 해녀들은 바다에 들어가 바위를 닦아내고 깎아내고 문지른다. 돌미역 포자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바위 표면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농사짓는 어매들의 공력은 언제나 상상 저 너머에 있다.

한겨울 동안 자연 상태에서 건강하게 자란 돌미역은 이듬해 3월에서 5월 사이 채취한다. 파도가 거친 날은 작업할 수 없다. 파도가 거세면 수확량이 줄어들고 그만큼 값도 오른다. 뭍으로 오른 미역은 바람과 햇볕이 좋은 갯가에서 건조된다. 흐려도 안 되고 비가 와도 안 된다. 매년 이맘때면 주전 바닷가에서 돌미역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집들 군데군데에 ‘주전 돌미역 지정 판매집’이라는 둥근 팻말이 붙어 있다. 해녀들의 상장처럼.

◆ 주전항과 몽돌해변

마을의 북쪽 해안의 중심은 주전항이다. 카페와 횟집은 마찬가지지만 거리는 넉넉하다. 항구의 긴 방파제 끝에 붉은 등대가 서 있다. 탑 모양이다. 선박의 항행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라 한다. 방파제 벽에 ‘주전마을’ 워드마크가 부착돼 있다. 사각의 까만 바탕이 미역이란다. 등대로 가기 위해 방파제에 접근하자 해녀가 불쑥 다가온다. 엄청 큰 검은 해녀, 높이 5m의 해녀반신상이다. 그 뒤로 바다 속을 헤엄치는 주전 해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주전항 북 방파제는 높이가 5m, 총 길이는 179m 규모다. 원래는 2.5m 높이였던 방파제를 풍랑 등에 대비하기 위해 높였다. 이후 해안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았고 멀건 방파제 옹벽만이 갯가 사람들의 눈에 걸렸다. 그래서 방파제에는 주전항의 모습이 더해졌다.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 등 마을에서 바라보면 방파제는 바다다. 방파제 끝에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다섯 살 정도의 아이가 작은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가만 기다리고 있다. 바닷바람에 볼이 붉다.

주전항 북쪽은 몽돌해안이다. 1.5㎞에 이르는 해안에 까만 몽돌이 가득하다. 새알 같이 둥근 돌은 크기도 제각각이다. 주전 몽돌해변은 ‘울산 12경’ 중의 하나로 울산 사람들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라 한다. 번다한 항구들을 거쳐 사람 하나 없는 해변에 들면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비워진다. 걸음마나 자글자글 이를 악무는 소리, 먼 데서 들려오는 차륵차륵 절도 있게 구르는 소리가 더없이 고요하다. 주전의 몽돌은 용암이 천천히 식어서 된 안산암이다. 처음에는 주상절리와 같은 지형이었던 것이 바람과 파도에 깨지고 깎여 돌멩이가 되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을까. 소년은 물고기를 잡았을까. 몽돌이 모래가 되기 전에 소년의 위풍당당 풍어가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부산 방향으로 간다. 언양 분기점에서 16번 울산선을 타고 울산IC에서 내려 7번국도 북부순환도로를 타고 간다. 연암IC교차로에서 31번 국도 무룡로로 경주 감포·울산 강동동 방향으로 가다 무룡나들목에서 오른쪽 주전동 방향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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