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원더스트럭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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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4   |  발행일 2018-05-04 제42면   |  수정 2018-05-04
하나 그리고 둘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와인과 함께 삼남매의 인생도 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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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나 와이너리에 관한 영화는 많이 봐왔지만 이만큼 영화관을 나가자마자 바로 와인을 마셔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던가. 세 남매가 함께 와이너리를 운영해 가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담아낸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감독 세드릭 클라피쉬)을 관람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이것이다. 와인 생각이 간절하게 만든다는 것. 그러나 ‘로마네 꽁띠’의 고향, 부르고뉴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만한 장점도 없음은 물론이다.


햇살·바람·토양 자양분 받으며 성장통 치유
자연·힐링…와인생각 간절하게 만드는 영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에 살던 큰아들, ‘장’(피오 마르아이)이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에 동생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오지 않았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장에게 섭섭함을 토로하지만 곧 오해를 풀고 포도 재배를 함께 한다. 집을 떠나 있던 장의 사연과 함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처음으로 자신의 와인을 만들게 된 ‘줄리엣’(아나 지라르도), 처가 식구들의 등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레미’(프랑수아 시빌)의 이야기가 따로 또 함께 펼쳐진다. 각기 다른 근심을 안고 있는 세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대화하고 땀 흘리는 시간들이다. 이들이 계절을 따라 넓은 포도밭 사이를 다니며 성실히 일하는 모습은 노동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운다. 그렇게 사람의 손을 타며 다른 풍경으로 변해가는 와이너리처럼, 저장고에서 조용히 숙성되고 있는 와인처럼, 부르고뉴의 햇살과 바람, 토양을 자양분 삼아 삼남매는 일련의 성장통을 겪으며 단단해져 간다. 소소한 듯 보여도 누구나 삶에서 비켜갈 수 없는 문제들을 꺼내놓은 후, 다시 재치 있게 쓱싹쓱싹 풀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걱정거리도 사라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연의 주기와 개인의 성장, 한 가족의 성숙을 시계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낸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원더스트럭
50년 뛰어넘은 소년·소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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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면 ‘디 아워스’(감독 스티븐 달드리)만 한 수작도 드물다. 원작자인 ‘마이클 커닝햄’은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쓰던 시점과 수십 년 후 그 책을 읽고 있는 독자, 그리고 다시 수십 년 후 그녀와 숙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여성을 기막히게 엮어 놓는다. ‘원더스트럭’(감독 토드 헤인즈)은 두 개의 시대에 놓여 있는 소녀와 소년을 만나게 함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 마지막 퍼즐 조각이 빈 자리에 끼워질 때까지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인물들의 교점을 찾게 만든다는 점 등에서 ‘디 아워스’와 유사하다. 세 인물이 세 개의 서로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소녀와 소년의 여정이 하나의 공간에서 조우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선천적·후천적 청각장애 가진 로즈와 벤
뉴욕 자연사 박물관서 시공간 넘은 만남


1977년, 열두 살의 ‘벤’(오크스 페글리)은 사서였던 엄마가 사고로 죽자 아빠에 대한 단서가 담긴 ‘원더스트럭’이라는 책과 서점 주소 하나를 들고 뉴욕으로 향한다. 한편, 1927년에 살고 있는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몬스)는 엄격한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선망하는 여배우의 공연을 보기 위해 뉴욕에 간다.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의 ‘호기심 방’에서 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연결된다. 여기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로즈의 여정을 그리는 방식은 형식상 두드러져 보이는데, 토드 헤인즈 감독은 1927년 첫 유성 영화 ‘재즈 싱어’(감독 앨런 크로슬랜드)의 등장 이전까지 모든 영화들이 이야기를 전달해왔던 방식, 즉 흑백 무성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한다. 화려한 색감과 다채로운 사운드를 사용한 벤의 시대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벤이 집을 떠나기 전 사고로 청각을 잃게 되면서 벤과 로즈는 또 하나의 연결 고리를 갖게 된다. 영화는 현실의 생생한 소리에 때때로 벤이 주관적으로 감지하는 불투명한 소리를 삽입시키면서 관객들을 인물의 불완전한 감각 안으로 끌어들인다. 선천적 장애를 가진 로즈의 무성영화 시대가 만들어냈던 고요한(silent) 스토리텔링과 유성영화 시대에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벤이 필담과 수화를 통해 타인과 소통해나가는 모습이 흥미로운 대비를 이루는 사이, 관객들도 영화사의 흐름에 따른 감각적 확장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은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를 조망하는 ‘원더스트럭’의 서사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난 벤은 박물관의 역사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로즈와 벤이 둘러보는 박물관은 과거가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시간을 시각화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는 박물관용 디오라마를 만들던 아빠의 직업에서도 엿보이지만 벤이 퀸즈 박물관에서 거대한 뉴욕의 파노라마 속에 선대(先代)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거대한 이미지 속에 시간을 박제해 놓는 것, 그것은 영화가 120년 남짓의 역사를 통해 추구해온 하나의 지향점과도 연결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휴고’(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원작자이기도 한 ‘브라이언 셀즈닉’은 자신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 각본까지 담당해 그만의 특별한 문학적 감수성을 더했다. ‘캐롤’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카터 버웰’의 스코어들은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일관성 있게 유지시켜주며, ‘에드워드 래크먼’의 촬영은 한 공간에서 유사한 듯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유연하게 뽑아낸다. 모든 연출적 요소가 더 바랄 나위 없이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작품이다. (장르: 전체 관람가, 등급: 드라마, 러닝타임: 115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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