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판문점 선언과 미래 세대를 위한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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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5   |  발행일 2018-05-05 제23면   |  수정 2018-05-05
[토요단상] 판문점 선언과 미래 세대를 위한 도리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4월27일의 기적’이라 할만한 판문점 회담의 상징적 의미와 그에 대한 비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북한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 경계석 위로 굳게 악수를 나눈 것부터가 분단 상황을 뒤흔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이들의 만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쪽으로 넘어온 데 이어서 두 정상이 함께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넘어온 것이다. 외신들의 보도처럼 그렇게 ‘춤을 추듯이’ 월경을 거듭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실에서 “믿을 수 없다(unbelievable)”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 만큼, 우리 국민 절대다수 또한 전혀 예기치 못한 그 장면에 놀라며 가슴 벅차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환호와 놀람, 감격이야말로 두 정상의 행위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리킨다.

남북한을 가르고 있는 휴전선이 넘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첫째요, 저렇게 넘다 보면 그것을 없앨 수도 있겠다는 것이 둘째다. 광복에 이은 미소 군정과 남북한 정부 수립, 6·25전쟁, 냉전시대의 대립을 거치며 70여 년간 분단의 현장이요 상징으로 가로놓여 온 휴전선이, 두 정상의 가뿐한 월경에서 보였듯이 넘을 수 있는 선, 없앨 수 있는 선이라는 사실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면서 우리들 마음의 한 경계 또한 열리게 된 것이 셋째 의미라 하겠다. 이렇게 휴전선이라는 경계를 지우고 분단을 끝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들 각자의 가슴에 불씨로 살아나게 된 것이야말로 내게는 소중해 보인다.

이러한 상징 의미를 입증하는 근거는 많다. 여러 언론에서 확인되듯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 중반대를 기록하기도 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믿는다는 우리 국민의 비율이 한 달 반 전에는 고작 10%였다가 78%로 급등한 것(블룸버그 통신)은 물론이요, 판문점 모형을 배경으로 해서 남북한의 두 정상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러한 민의는 지난 10여 년간 끝을 모르게 치닫던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온전한 평화가 마련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소망이 봄날의 꽃처럼 우리 국민들 가슴에 피어났음을 알려 준다.

2018년 오늘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판문점 만남에 환호하고 판문점 선언이 가져올 미래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의 지지는 그럴듯한 쇼에 현혹되어서가 아니라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제 열리기 시작했다는 판단에서 온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선택지로 삼지 않는다면 지금 펼쳐지기 시작한 협상이야말로 최선이라는 사실과, 북핵 폐기의 구체적인 시기와 절차는 미국과 세계 기구의 주관 아래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아는 까닭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쇼를 한다 하고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을 좌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억압했던 매카시즘을 시대착오적으로 되살리려는 황당한 작태요,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맹목이고, 정치적으로 상대방이 잘하는 것 자체를 봐 주지 못하는 치졸한 시기심의 발로이자,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정략적 이해만 따지는 정치 모리배의 억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수립이 1~2년이 걸릴 어려운 과제이며 그 과정에 있어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정부 여당도, 국민도 모르지 않는다. 이것을 과제로 받아들이는 우리 중 누구도, 숙제하기가 힘드니까 숙제가 싫다 하고 성적이 나쁠까봐 학교 자체를 없애자는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대책 없는 비난꾼들만이 그런 소리를 하는 법인데, 속된 말처럼 이 땅을 떠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 또한 한반도의 평화라는 과제를 외면하지 말고 제 몫대로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치 모리배이기 이전에 미래 세대를 위한 국민으로서의 도리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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