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특권층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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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2   |  발행일 2018-05-12 제23면   |  수정 2018-05-12

필자의 1980년대 군대시절 이야기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한 고참이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별 네 개인 대장보다 높은 계급이 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는 “육군 병장”이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졸병 입장에서 보면 병장의 위세가 대단하긴 했다. 고참 병장의 경우 내무반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식당에 가기 귀찮으면 졸병을 시켜 밥을 타서 먹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고참이 됐을 땐 그런 특권을 누리진 못했다. 하필 그 시기에 병영문화 개선 바람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병장의 특권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었다. 힘든 졸병 시절을 지내고 나면 누구나 가질 수 있었기에 적어도 공평한 측면은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특권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한 번 특권을 쥐면 평생을 누리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특권층이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국가나 사회에 공헌한 대가로 특권을 얻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재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남용하면서 갑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일부 엘리트층의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이를 용인해온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 탓이 크다.

요즘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어쩌면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쇠고랑을 찰 가능성도 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드러난 이 가족의 민낯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과거에 재벌가 갑질 사건이 불거진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엔 소위 ‘역대급’이다. 수십 년간 자행해온 온갖 갑질과 불법, 비리를 보면 기가 막힌다. 이를 두고 가족 전체가 ‘권력 중독’ 증상을 앓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보다는 ‘특권 중독’이란 표현이 더 적확할 듯 싶다.

우리 사회의 특권층 명단에서 빠지면 섭섭한 곳이 정치권 특히 국회일 것이다. 알다시피 국회의원은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대우를 받는다. 알려진 특권만 200가지나 되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들의 정치 수준은 4류인데 대우는 초일류급으로 받는 셈이다. 정치 선진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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