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창조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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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4 08:14  |  수정 2018-05-14 08:14  |  발행일 2018-05-14 제20면
[밥상과 책상사이] 창조적 사고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한다. 돌 지나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중 누가 더 좋은지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는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이 섭섭해한다. 답하지 않거나 둘 다 좋다고 말하면 발육이 더딘 아이, 또는 영악한 아이로 간주된다. 세상에는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 다그치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경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려야 그 부질없는 강요는 중단된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를 본능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지금 당장 득을 볼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우리는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단순하게 맞고 틀리고를 고르는 OX 문제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답을 골라야 하는 오지선다형 수능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말로는 토론식 교육을 강조하지만 수능시험은 여전히 객관식 선다형 문제다. 해마다 수능시험 직후에는 ‘정답 이의 신청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매년 엄청난 이의 제기가 있고 간혹 정말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깊은 사고력이나 창의력보다는 누군가는 실수로 틀리도록 매력적인 오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판사로부터 ‘예, 아니요’로만 답하라고 주의를 받은 피고가 판사에게 질문했다. “판사님은 묻는 말에 ‘예, 아니요’라고만 답할 수 있나요?” 판사가 그럴 수 있다고 하자 피고가 판사에게 물었다. “판사님, 판사님은 요즘도 부인을 계속 때리시나요?” 아내를 때린 적이 없는 판사는 이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어느 쪽으로 답하든 아내를 때린 사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는 “당신이 단 하나의 생각만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안을 두고 단 하나의 해결책만 제시하거나 보기를 나열해 놓고 그 중에서 가장 적당한 것이나, 가장 거리가 먼 것만을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 피고가 판사에게 한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답을 하기 전에 질문 자체의 타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보기도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한다. 때론 확실하고 분명한 것보다는 모호함을 인정하고 용인하며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상식적이지 않고 바보 같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로부터 논리적이지 않다는 소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창조적 사고는 기존의 방식에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때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단선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차이’가 ‘가치’인 시대를 살고 있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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