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모바일 청첩 유감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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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4   |  발행일 2018-05-14 제31면   |  수정 2018-05-14

계절의 여왕 5월, 지인의 자녀 결혼 소식이 도처에서 답지(遝至)한다. 신록은 싱그럽고 대기는 청명하니 결혼시키기 좋은 계절이다. 모기가 창궐하기 직전까지는 이 은혜로운 시기를 만끽하고 잘 활용하고 싶은 게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자녀의 결혼 소식 전화를 받고 축하 인사와 함께 청첩장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곧바로 휴대폰으로 모바일 청첩장이 온다. 종이 청첩장의 앞뒤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전송한 것이다. 인간사 편리 선호 세태를 이해하지만 필자처럼 난감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로 성능이 신통찮은 휴대폰 때문이다. ‘효도폰’ ‘할배폰’ 등으로 불리는 접이식 폴더폰은 대개 2G 아니면 3G 방식이다. 상위 용량의 모바일 청첩장 용량을 주인 마음과는 달리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큰 글씨 일부만 판독되기 때문에 모바일 청첩장은 무용지물이 돼 버리는 것이다. 청첩장 내용을 모바일로 보낸 혼주는 상대방의 이런 딱한 사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자신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면 상대방도 당연히 스마트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폴더폰 소지자는 다시 혼주에게 전화를 해서 글자가 안 보이니 e메일이나 다른 방식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슬그머니 짜증이 난다. 자신이 소지한 폴더폰 성능이 그렇고, 성의 없고 무심한 상대방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라는 거창한 말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결혼식은 축복 그 자체여야 한다. 하객들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도 마찬가지다. 행여 어떤 부채감 때문에 억지 춘향이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경우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좋다. 결혼 초대장은 문서로 한두 달 전에 정중히 보내는 게 적절하다. 그런 다음 하객들의 망각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행사 1~2주 전에 모바일로 결혼식 안내를 해주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런 지적 때문에 대다수 혼주들은 지인들 주소를 일일이 물어 인쇄된 청첩장을 미리 보낸다. 모바일은 편리하고 빠르지만 결혼식 안내를 모바일로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상례와는 달리 결혼은 미리 준비되는 행사다. 바쁘기 때문에 모바일로 보낸다는 핑계는 수긍하기 어렵다. 2G·3G 할배폰을 쓰는 구석기인의 편견이라고 해도 달리 할 말이 없지만.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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