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20] 충남 계룡산 갑사구곡...친일 매국 윤덕영이 설정한 구곡…곳곳에 깊이 새긴 글씨 아직도 선명

  • 김봉규
  • |
  • 입력 2018-05-17 07:57  |  수정 2021-07-06 14:50  |  발행일 2018-05-17 제22면
20180517
계룡산 갑사 옆을 흐르는 갑사계곡에 설정된 갑사구곡 중 8곡 용문폭. 소 앞 암반에 ‘8곡 용문폭(八曲 龍門瀑)’이라고 새겨져 있다.
20180517
용산구곡의 중심 굽이인 5곡 금계암 주변 풍경. 주변 바위 곳곳에 ‘오곡(五曲)’ ‘삼갑동주(三甲洞主)’ 등 다양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

충남 계룡산(鷄龍山·845m)은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의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또한 무학대사가 신도(新都)를 정하기 위해 조선 태조 이성계와 함께 신도안의 좌우 산세를 둘러보고 ‘이 산은 한편으로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니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 데서 계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계룡산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3악(상악 묘향산, 중악 계룡산, 하악 지리산) 중 중악(中嶽)으로 불렸다. 196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인 중악단(보물 제1293호)이 지금도 계룡산에 남아 있다. 이 계룡산의 계곡에도 두 개의 구곡이 있는데, 갑사구곡과 용산구곡이다. 모두 20세기(갑사구곡 1927년, 용산구곡 1932년)에 설정된 구곡이다. 특이하게 구곡 설정 주인공이 한 사람은 친일 매국의 대표적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술국치 이후 은거하며 독립의 염원을 구곡에 담아 표현했던 선비여서 극단적 대비를 이뤄 관심을 끄는 구곡이기도 하다.

◆윤덕영이 1927년에 설정한 구곡

갑사구곡은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 2㎞ 정도에 걸쳐 있는데, 벽수(碧樹) 윤덕영(1873~1940)이 설정한 구곡이다.

윤덕영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왕비, 순정효황후의 삼촌이다. 순종황제의 장인은 윤택영으로, 윤덕영의 동생이다. 윤덕영은 황실의 외척으로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1910년 경술국치 때는 순종황제와 황후를 위협해 황후의 치마 속에 감추었던 옥새를 빼앗아 한일합병을 앞장서서 조인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윤덕영은 노년에 갑사 앞 계곡 가에 지은 간성장(艮成莊)이라는 별장에 머물며, 이곳을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경치가 좋은 아홉 군데를 골라 9곡을 설정했다. 그리고 곡마다 그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행서로 된 이 각자(刻字)는 글씨를 새길 부분을 네모 형태로 파내 평평하게 다듬은 후 거기에다 글씨를 매우 깊게 새겼는데, 지금도 글씨가 선명하다. 구곡 명칭뿐만 아니라 계곡 곳곳에 주역 관련 글귀 등 다양한 글을 새겨놓았다.


벽수 윤덕영
대한제국 순종황제비의 삼촌
옥새 빼앗아 한일합병 조인시켜
노년기 갑사계곡 별장에 머물러

갑사구곡
1927년 갑사계곡 2㎞ 걸쳐 설정
별장 간성장 주변엔 5곡 금계암
구곡의 중심으로 풍광도 뛰어나



간성장은 당시 공주 갑부 홍원표가 계곡 암반 위에 지어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 별장으로, 그 터는 갑사와 30년 임대계약을 하고 사용했다고 한다. 간성장은 윤덕영이 애용하다가 나중에는 공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박충식(1903~66)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그 후 한동안 전통찻집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외부 손님이 묵는 갑사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간성장 앞 계곡인 5곡 금계암을 중심으로 설정한 갑사구곡의 곡별 이름은 1곡 용유소(龍遊沼), 2곡 이일천(二一川), 3곡 백룡강(白龍岡), 4곡 달문택(達門澤), 5곡 금계암(金鷄巖), 6곡 명월담(明月潭), 7곡 계명암(鷄鳴巖), 8곡 용문폭(龍門瀑), 9곡 수정봉(水晶峯)이다.

용이 노니는 못이라는 의미의 용유소는 갑사 사찰매표소를 지나 계룡산국립공원 갑사탐방지원센터로 향하는 다리 아래에 있다. 바위계곡 아래 형성된 작은 못이다. 주변 바위에는 ‘일곡 용유소(一曲 龍遊沼)’와 더불어 ‘간성장(艮成莊)’ ‘삼갑동문(三甲洞門)’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간성장’ 각자는 5곡과 9곡 주변 바위에도 새겨져 있다.

2곡 이일천은 1곡에서 한참 올라가는데 계곡 가에 있는 철탑상회 부근이다. 이곳은 수정봉과 연천봉에서 발원한 두 계곡물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일천이라 했다. 계곡 옆에 있는 바위에 ‘이곡 이일천(二曲 二一川)’이라 새겨져 있다.

3곡 백룡강은 여름 우기에 물보라가 마치 흰 용이 꿈틀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를 띄워 풍류를 즐기던 곳인 4곡 달문택은 갑사 화장실 건너편 아래 계곡을 막아 만들어놓은 못이다.

◆윤덕영 별장 ‘간성장’ 주변이 중심

5곡 금계암은 간성장 주변에 있다.‘계룡갑사’라는 편액이 달린 갑사 강당 건물 앞을 지나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길 옆에 공우탑(功牛塔)이 보이는데, 이 공우탑 옆을 지나 계곡 쪽으로 내려가면 간성장을 지나 계곡을 건너는 다리(대적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 바위에 ‘금계암’이라 새겨져 있다. ‘5곡(五曲)’이라는 글씨는 계곡 바위에 따로 새겨져 있다. 금계암은 계룡산이 풍수학에서 말하는 금계포란의 명당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적교 아래쪽 계곡이 5곡이다. 갑사구곡의 중심이고 풍광도 매우 좋다.

5곡에서는 많은 각자를 확인할 수 있다. ‘오곡’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 옆 다른 바위에는 ‘삼갑동주(三甲洞主)’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고, 그 오른쪽에 ‘일중석(一中石)’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20여자의 글자가 도형적으로 새겨져 있다. 왼쪽 끝에는 ‘간옹명(艮翁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주역과 천문지리에 능했다는 윤덕영이 새긴 것이다. 이 밖에도 부근에서 ‘간도광명(艮道光明)’ ‘은계(銀溪)’ ‘순화임원(舜華林園)’ ‘용화(龍華)’ 등 많은 각자를 확인할 수 있다.

공우탑도 윤덕영과 관계가 깊다. 공우탑은 지금의 자리에 옮기기 전에는 대적교 바로 옆에 있었다.

공우탑은 백제 비류왕 시절 갑사의 부속 암자를 건립할 때 건축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가 죽자 그 넋을 위로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암자에 있던 이 탑을 윤덕영이 간성장 근처로 옮겨 세우고, 탑신 1층 정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넣었다. ‘와탑기립(臥塔起立) 인도우합(人道偶合) 삼혜을을(三兮乙乙) 궐공거갑(厥功居甲)’이라는 글이 있다.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사람의 도리에 부합되네. 세 번을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다’라는 의미다.

윤덕영 자신이 쓰러져 있던 탑을 일으켜 세운 것을 자화자찬하고 있는 내용인데, 후세인들의 비난을 받는 일이 되었다. 대적교 옆에 방치되어 있던 공우탑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6곡 명월담은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곳 부근 계곡으로, 작은 폭포와 소가 있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잔잔한 물 위로 밝은 달이 비치면 각별한 정취를 선사할 만하다. 소 옆의 큰 바위에 한자로 ‘6곡 명월담’이라 새겨져 있다.

명월담에서 잠시 올라가면 나오는 7곡 계명암은 계룡산이 처음 열릴 때 산속에서 닭이 날갯짓을 하며 울었다는 바위다. 이 바위에 ‘7곡 계명암’이라 새겨놓았다.

8곡 용문폭은 용문폭포를 말한다. 폭포가 10m 정도로 비교적 높고 그 아래 소도 큰 편이다. 소 앞 너럭바위에 ‘8곡 용문폭’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다.

‘9곡 수정봉’ 각자는 용문폭에서 850m 정도 더 올라가면 나오는 신흥암의 산신각에서 50m 위쪽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신흥암에서 보이는 수정봉은 암벽을 아름답게 깎아 세워놓은 모습의 멋진 봉우리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봉규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