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최저임금 ‘탓’ 더이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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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7   |  발행일 2018-05-17 제30면   |  수정 2018-05-17
[취재수첩] 최저임금 ‘탓’ 더이상 안된다
이연정기자<경제부>

상식적으로, 아주 기본적으로 생각해본다.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 가계 소득이 늘어날 테고, 이는 곧 재화나 서비스의 소비로 이어진다. 증가한 수요만큼 공급을 하기 위해 소매업체, 유통업체, 도매업체, 원재료업체들이 줄줄이 인력을 고용하고 그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재인정부가 내건 소득주도 성장의 근본 취지도, 올 1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16.4% 껑충 뛴 최저임금 인상안의 목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5개월째를 맞은 현실은 다르다.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서 가계 소득이 늘어났지만 물가도 함께 올랐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업체들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일자리를 없앴다. 단기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더라도 비슷한 인건비라고 신입보다 경력을 선호하면서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아예 고국을 떠나 베트남, 인도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소비자 물가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외식업계는 롯데리아, KFC, 맥도날드, 파리바게트 등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를 중심으로 지난해 말부터 줄줄이 가격 올리기 대열에 동참했다. 이제 ‘프리미엄’을 표방한 일부 버거 세트 가격은 9천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일부 업체는 배달 서비스 이용료를 받겠다고 나섰고, 그동안 무료로 제공하던 식전 빵과 치킨 무도 일일이 돈을 주고 구입해서 먹게 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대구의 음식서비스 물가지수는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연속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자주 구매하는 가공식품 가격도 1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지난달 콜라 가격은 전년동월대비 무려 11.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석밥과 설탕, 어묵 등의 상승폭도 컸다. 카레와 컵라면, 시리얼, 간장 등도 전월대비 가격이 최대 4% 오르는 등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제품·서비스 가격 인상을 단행함에 있어 ‘최저임금 인상’은 하나의 명분이자 도화선이 됐다.

눈치를 보던 업체들도 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가격을 올리자 잇따라 담합 아닌 담합에 나섰다. 비단 물가만 문제가 아니다. 매달 최악을 기록하는 실업률도,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도 모두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시장 악화, 생산성 감소 등 경제 선순환 고리에 악영향을 주는 것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하는데, 그 원인을 죄다 최저임금 인상으로만 돌려버리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의 가치를 다시 살펴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것이 악(惡) 분수효과뿐이라면 그 평가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을 앞세워 서민 생활을 흔드는 요인들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연정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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